[가야역사를 찾아서] (20·끝) 불멸의 가야문화(伽倻文化)잊혀진 왕국 아닌 ‘영원한 가야’를 꿈꾸다가야가 이 땅에서 사라진 지도 1500여년이 지났다. 가야는 우리나라 고대국가시대 때 고구려 신라 백제만의 3국이 아닌, 당당한 4국시대를 열어가며 한반도 남부지방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다. 그러나 문헌사료의 절대 부족과 또 기록이 왜곡 말살되고 의도적으로 파괴되는 바람에 가야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가야는 좀처럼 제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여태까지 설화로 숨쉬는 ‘잊혀진 왕국’ 정도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경북의 상주에서부터 성산 고령을 거쳐 함안 고성 김해에 이르기...2017-11-27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9) 비밀 간직한 고분(古墳)무덤 속에서 잠자는 가야 역사▲고분유물, 가야역사 복원에 중요한 자료가야는 역사적 실체를 증명할 기록이 거의 없다. 역사에서조차 ‘신비의 나라’ 또는 ‘잊혀진 왕국’ 등 설화(說話)에 의존한 작은 왕국 정도로만 취급하며 가볍게 다뤄져 왔다. 또 신라에 귀속된 뒤로는 역사마저 신라에 포함시켜 버렸다.그러나 1970년대 이후 옛 가야지역의 고분(古墳)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들로 인해 500년 가야역사는 설화가 아닌 실체로서 한국사의 전면에 등장, 가야역사의 복원을 가능케 했다. 이처럼 가야고분은 가야역사를 자리매김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분은 사...2017-11-20 22:00:00
[가야역샤를 찾아서] (18) 가락궁궐(駕洛宮闕)궁궐은 온데간데없고 역사만 잠자고 있다왕조시대에 왕실의 권위와 나라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궁궐이다. 지리적 행정적으로 나라의 중심이 되는 곳에 왕도(王都)를 정하고 왕도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큰 집을 지어 왕이 거처하면서 정사를 펴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궁궐은 나라와 왕실의 상징이었다.김수로왕이 나라를 세울 때 지금의 김해에 도읍지를 정하고 10대 구형왕(仇衡王)까지 491년간 고구려 신라 백제와 함께 4국 시대를 열어가며 우리나라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했던 가야의 맏형 가락국. 그러나 김해에는 그 어디에서도 옛 궁...2017-11-13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7) 가야불교(伽倻佛敎)인도서 불교 직접 전래… 한반도 최초로 추정김해에는 가야불교 전래설을 뒷받침하는 유적 유물들이 많다. 수로왕후 허황옥의 모국, 인도 아유타에서만 볼 수 있는 불교의 상징인 코끼리상과 신어(神魚)문양, 파사석탑(婆娑石塔) 그리고 절터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코끼리상과 신어는 수로왕릉 앞 납릉정문(納陵正門) 등에 있으며 허왕후릉 앞에 있는 파사석탑은 인도에서 주로 불탑의 재료로 쓰이는 파사석으로서 이들은 모두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가락의 국명으로 쓰고 있는 ‘가야’라는 말도 부처님이 도(道)를 터득한 인도 부다 가야(GAYA)에서 따온 불...2017-11-06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6) 가야철기(伽倻鐵器)철기문화 꽃피운 ‘철의 왕국’ 가야▲무기·농기구 다량출토 철의 왕국 입증가야는 철(鐵)의 왕국이다. 김해를 중심으로 한 옛 가야지역은 철의 대량생산으로 고대 가야국이 국가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 고대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도 바로 철 생산 때문이었다. 가야 제국(諸國)은 다만 6개로 분할된 작은 왕국으로 난립해 통일국가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고도의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신라, 백제를 비롯한 낙랑, 중국대륙 등과도 긴밀한 교류를 이룰 만큼 큰 세력이었음은 각종 유물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 한문화(漢文化)의 영향으로...2017-10-30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5) 가야토기(伽倻土器)흙그릇에 담긴 가야인의 숨결과 체취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500년 가야역사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가야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옛 가야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해법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가야역사는 좀처럼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또한 가야가 남긴 유물 가운데 가야역사를 올바르게 전해 줄 수 있는 서적이나 명문(銘文)도 거의 없다.그러나 최근 가야지역 옛 땅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해 기존 문헌사료들이 빠뜨린 가야사의 공백을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복원할 수 ...2017-10-23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4) 가야차(伽倻茶)가야문화는 차향으로 시작되다
▲허왕후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품
가락국 시조대왕 김수로(金首露) 왕의 왕후 허황옥(許黃玉)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혼수품 중에는 옥합에 든 차(茶)의 씨앗을 비롯, 수를 놓은 비단옷과 금, 은, 주옥으로 만든 장신구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것은 가야시대에 차의 전래를 유추할 수 있는 것으로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타난 기록이다. 따라서 가야문화는 차로부터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때가 서기 48년이다.
구한말의 국학자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도 인도차의 전...2017-10-16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3) 가야금(伽倻琴)가야금 만든 가야국 출신 우륵 ‘우리나라 3대 악성’
아래 가야 한 곡조여이산(耳山)에 줄을 걸어 백결(百結)의방아타령과극종(克宗)의 평조(平調)가락을 타네금곡(琴谷)에 올라가 길게 탄식하나니고국은 아득한데 노래 가락만 남았구나이 악기의 훌륭함을 찬미하고그 이름이 유구(悠久)함을 회상하노라
가야금의 창시자 우륵(于勒)이 태어난 옛 대가야의 수도 경북 고령 지방에 전해오는 가야금 12곡 가운데 맨 첫 곡의 노래 내용이다. 가야금은 고조선시대의 북(鼓)과 중국의 쟁(箏)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악기 60여종 가운데 거문고 비파와 함께 ...2017-10-10 07: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2) 가락국 마지막 왕의 무덤 구형왕릉(仇衡王陵)“돌무덤 속에서라도 가야 백성을 지키겠노라”▲어찌 흙속에 묻힐 수 있으랴‘나라를 보전하지 못한 내가 어찌 흙 속에 묻힐 수 있으랴. 차라리 돌 속에 들어가서라도 가야백성을 지키겠노라.’ 신라에 나라를 넘겨준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仇衡王)은 별궁인 산청의 지리산 수정궁(水晶宮)에서 나라 잃은 설움에 눈물로 나날을 보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나라를 넘겨줬기 때문에 양왕(讓王)이라 일컫고 스스로 심산유곡에 묻히기를 원했던 구형왕은 자신의 한(恨)을 외진 산골에 돌무덤으로 남긴 것이다. 6가야의 맹주로서 고구려 신라 백제와 함께 ...2017-09-25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1) 비화가야(非火伽倻)창녕 일대 비사벌땅, 유물·유적 많아 ‘제2의 경주’
창녕읍 화왕산 자락 교리와 송현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사적 제514호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제2의 경주, 가야시대 유적 유물 즐비창녕은 화왕산(火王山) 기슭에서 낙동강 연안의 벌판을 거느리고 있는 옛 가야의 도읍지이다. 창녕읍내로 들어오는 길목 여기저기에는 선사시대 지석묘부터 시작해서 비화가야 고분이 낙타등처럼 늘어서 있다. 잊혀진 왕국, 가야의 500년 역사를 다시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엉켜 있는 가야시대 고분들이다.영남의 중추인 낙동강의 자양으로 번성해온 창녕은 ‘제2의 경주’로 불릴 정도로 가야시대의 유...2017-09-19 07: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10) 고령가야(古寧伽倻)낙동강 요충지에 건국했지만 짧은 역사로 잠들다경북 상주시 함창읍은 낙동강 중류에서 남해에 이르는 가야의 권역 중 최북단에 위치한 고령가야(古寧伽倻)의 고도(古都)다. 이곳에서 하류로 고령(대가야) 성주(성산가야)는 경북에 있고 김해(가락국) 함안(아라가야) 고성(소가야)은 경남에 있어 6가야는 낙동강 연안 따라 700리의 장사형(長蛇形)을 이루고 있다.이 가운데 고령가야의 도읍지 함창은 험준한 조령(鳥嶺)으로 인해 백제와 경계를 이루고 낙동강의 장원(長源)으로 가야제국과 통하는 길목에 있다. 이러한 요충은 명승(名勝)과도 상통해 양택(陽宅)과 음택(陰宅)을 한데...2017-09-11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9) 성산가야(星山伽倻)아련하게 남은 역사 흔적… 깨어날 준비하다▲수로왕 넷째 동생 벽로(碧露)가 건국성산가야(星山伽倻)의 고도(古都)인 경북 성주 (星州)에는 옛 가야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성주 땅은 가야문화권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유서 깊은 고장이라는 이 고장 사람들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성주는 가야역사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벽진가야(碧珍伽倻)라고도 불리는 성산가야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네 번째 동생 벽로(碧露)가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관련기록과 유적 유물을 거의 남기지 않은 탓이다.성주군청의 성주군 연혁과 역사소개에서조차 이 고장...2017-09-04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8) 대가야(大伽倻)장엄한 문화유적에 깃든 대국의 풍모
산 능선에 줄지어 선 낙타등 모양의 지산동고분군.
▲가야연맹의 맹주경북 고령군(高靈郡)은 가야산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이뤄 놓은 유서 깊은 고장이다. 대가야(大伽倻)의 고도(古都) 대가야읍에는 성터를 비롯해 고분군, 토기요지(土器窯址), 고분출토 유물, 산성, 그리고 우륵(于勒)이 최초로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정정골 등 곳곳에 문화유적이 많아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하나에도 대가야 500년 역사의 숨결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대가야는 수로왕의 둘째 동생 대로(大露) 또는 뇌질주일(惱窒朱日)을 시조로 서기 ...2017-08-29 07: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7) 소가야(小伽倻)수로왕 막냇동생의 나라… 소박하지만 찬란했다옛 소가야(小伽倻) 땅 고성(固城)에는 왕국이 실존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또 작은 왕국의 고도(古都)다운 분위기도 아니다. 6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의 6형제 중 막내인 말로(末露)가 가락 건국 15년 후인 서기 57년, 지금의 고성지방에 나라를 세운 후 9대 이형왕(而衡王) 29년(서기 532)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 475년간 이어져 왔으나 막내 왕국답게 소박하고 조용히 나라를 경영해온 까닭이다.고성은 삼한시대의 변진(弁辰) 12국 가운데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또는 포상팔국(浦上八國) 중의 한 작은 부족사회인 고자국(古資...2017-08-21 22:00:00
[가야역사를 찾아서] (6) 아라가야(阿羅伽倻)1500년 전 꽃피었던 문화, 다시 꽃필 날 기다린다▲신라 백제와 맞선 큰 세력함안군 가야읍은 6가야 가운데 비교적 세력이 컸던 옛 아라가야(阿羅伽倻)의 고도(古都)다. 해발 50m 안팎의 도항리와 말산리, 신음리, 가야리 등에 부챗살처럼 퍼져있는 말이산 구릉은 이 고장의 진산(鎭山)인 여항산(艅航山)으로 모아지며 까마득한 옛 가야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말이산은 남북으로 길게 2㎞ 정도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세 가닥 능선에는 5~6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큰 고분이 정상부를 따라 나란히 배...2017-08-07 2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