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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당선작은 우광미의 ‘댓돌’로 선했다. 이 작품의 구성이나 문장력을 보면 서슴없이 결정해야 될 글이었지만, 당선작으로 올리며 약간의 숨고르기가 있었다. 다른 많은 응모작품들처럼 농경기의 체험에 바탕을 둔 소재가 걸림돌이었다. 그냥 한 편일 때는 빛날 수 있는 글이지만, 너도나도 비슷한 배경과 소재로 글을 쓰게 되면 돋보일 수가 없다. 300편이 훨씬 넘는 수필작품 속에서 ‘하나’로 선택되려면 참신함, 즉 자신만의 ‘뭔가’가 있어야 한다. ‘댓돌’이라는 제목부터가 경쟁을 뚫기에는 밋밋하다 못해 고루하기까지 하다. 제목 때문에 외면당할 수도 있었다.
정목일
황광지비단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작품뿐이겠는가. 센스 있는 제목이 독자의 시선을 잡아두기도 하는 것이니, 제목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겠다.
다행히 우광미의 ‘댓돌’은 밋밋한 제목과 낡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구조가 짜여있고, 마음의 경지에 이르는 전개와 서술이 예사롭지 않았다. 댓돌에 닿은 시선을 확장하여 사유의 세계로 나아가는 자신만의 발견과 성찰이 감동의 문장을 만들어 놓았다. 자칫 의례적인 넋두리에 빠지지 않으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움이나 가르침을 진부하게 표현하지 않으려는 섬세한 노력도 엿볼 수 있었으며 주제를 일관성 있게 끌어가는 힘도 느껴졌다. 오랜 수필쓰기의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탄탄한 문장이 심사위원의 심경을 건드렸다. 이 작가가 장점을 한층 발휘하여 새로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기를 기원하며 큰 박수를 보낸다.
수필쓰기에 여념이 없는 작가지망생이나 이미 길에 들어선 작가들에게도 다시 말하지만, 시대에 맞는 삶의 모습과 발견, 그리고 깨달음이 있는 수필의 전개가 요구된다. 수필은 체험을 통해서 탄생하는 진솔함이 깃든 문학작품이다. 체험이라고 해서 주변에서 손쉽게 얻는 소재를 글에 옮겨놓으면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에 이르기가 쉽지 않다. 희소한 수석을 찾아서 눈을 부릅뜨듯, 희귀한 난을 찾아 산지를 헤매듯 글의 참신한 소재를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옛날에 먹혔던 글감에 안주하게 되면 식상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심사위원 정목일·황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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