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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숲이 훔쳐갔지요- 양예준

  • 기사입력 : 2020-01-02 07: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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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자락 아래 할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몇 해 전 할머니가 하늘로 가서 할아버지는 혼자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큰 쟁반에 과일과 좁쌀을 담아 마당에 내놓으며 말합니다.

    “어서 오너라. 식구들아.”

    동물과 새들이 날마다 슬금슬금 찾아와 먹고 갑니다.

    할아버지는 텃밭을 일구고 산에 약초를 캐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 깎는데 보냅니다. 젊은 시절부터 나무를 다루는 솜씨가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산에서 죽은 나무를 베어와 칼과 끌을 이용해 나무를 깎고 쉼 없이 다듬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손끝에서 나무는 새가 되고 너구리가 되고 토끼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세심한 손길에 의해 새의 날개 깃, 눈동자, 부리가 생생히 표현됩니다. 할아버지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면 뿌듯한 마음으로 인형에게 말을 했습니다.


    “수리수리 부엉아. 부엉부엉 밤의 시간을 알려주어라.”

    “산토끼 토끼야, 꽁지가 빠지도록 저 산을 마음껏 뛰어다니렴.”

    “꾸엑꾸엑 멧돼지는 아이 많이 낳고 잘 살아라.”

    매일 할아버지 집 마당에 새들과 동물들이 찾아와 자리를 차지합니다. 나무 인형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동네 사람들도 구경하러 부쩍 찾아옵니다. 어떤 이웃은 소쿠리에 고구마와 옥수수를 담아서 오기도 합니다.

    “이 노루 좀 봐. 어쩌면 이리 똑같을까.”

    “솜씨가 보통이 아니에요. 예술 작품이에요.”

    “두루뭉술한 게 하나도 없구먼.”

    할아버지는 평상에 찐 단호박과 감자, 오미자차를 내와 마을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두가 할아버지 솜씨가 좋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무 깎는 솜씨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음과 정성이에요. 만약 노루를 만든다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루만 생각하고 나무를 깎아야 해요. 잡생각이 들어가면 노루는 고라니가 되고, 부엉이는 소쩍새가 될 수 있거든.”

    사람들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목각인형 덕분에 적적했던 집이 마을 사랑방이 돼가는 것에 행복을 느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흐르며 저마다의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마당에 있는 부엉이가 날개를 살짝 펴는가 싶더니 접습니다. 너구리가 두툼한 꼬리를 살랑 흔듭니다. 토끼가 기다란 귀를 쫑긋 세웁니다. 작은 움직임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걸망을 메고서 산에 올랐습니다. 몸에 좋은 약초를 캐기 위해서입니다. 할아버지는 약초를 캐면서 밀렵꾼이 산에 뿌려놓은 덫과 올가미를 다 거둬들였습니다. 동물들이 덫과 올가미에 걸려 죽는 일이 생기곤 하니까요. 올가미에 걸린 동물을 보면 할아버지는 손수 풀어주거나 동물구조협회에 연락을 해 동물들을 구조해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산길을 올라 능선을 넘습니다. 산 두릅과 칡, 식용버섯 등 많은 약초들이 산에서 자랍니다. 할아버지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채취합니다. 가파른 비탈길에 누운 고목나무에서 버섯 세 개를 따고 내려오던 중, 할아버지는 그만 두터운 낙엽에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비탈길에서 뒹굴다가 저 아래 나무를 붙잡고서 겨우 멈추었습니다. 허리가 삐끗한 할아버지는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할아버지는 방안에 누워 지냈습니다. 마을 이웃이 찾아와, 약을 건네주기도 하고 죽을 쑤어주고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허리를 짚고 마당에 잠시 나와 공기를 쐬었습니다.

    “밭도 갈아줘야 하고 콩도 심어야 하는데 몸이 아프니….”

    할아버지는 나무 의자에 앉아 손자에게 줄 목각인형을 들고 끌 작업을 했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용주의 인형이라 마음이 흐뭇합니다. 할아버지는 과일과 고구마를 썰어 쟁반에 담아 내놓고 들어갑니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자리에 누워 끙 앓다가 불을 끄고 잠이 들었습니다.

    주위가 고요합니다.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만이 슴벅슴벅 눈을 깜빡이고 있습니다. 주변 숲에서 부우우우~ 소쩍쩍~ 하는 소리가 몇 번 들리자, 마당에 있는 부엉이와 소쩍새 나무 인형이 슬며시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더니 동그란 눈을 껌벅입니다. 집주변 나무들 사이로 동물의 눈빛들이 빛을 내며 천천히 이동합니다. 마당에 있는 고라니와 멧돼지, 토끼, 노루, 너구리가 앞발을 낮게 누르며 기지개를 켭니다. 동물들이 나무 탁자에서 폴짝 내려오고 새들은 낮게 한 번 날고선 평상에 앉았습니다. 너구리가 겨드랑이를 박박 긁으며 말합니다.

    “아, 몸이 얼마나 근질근질했다고.”

    그러자 토끼가 뒷다리로 귀를 톡 치며 말했습니다.

    “난 한달음에 뛰쳐나가고 싶었지. 헤헤.”

    이어서 부엉이가 날개를 퍼득거리며 말합니다.

    “날개가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야.”

    동물들은 달빛 아래 마당에서 저마다 몸을 풀었습니다. 소쩍새가 말합니다.

    “자, 우리가 이렇게 나온 이유는 다 알겠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였습니다. 모두 해맑은 얼굴로 곳간으로 갑니다. 각자 곳간 안에서 호미와 낫, 괭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부엉이와 소쩍새는 콩과 씨앗을 입에 뭅니다. 힘이 좋은 멧돼지는 삽괭이를 들고서 밭을 갑니다. 토끼는 낫을 들고 잡초를 꼼꼼히 제거합니다. 노루, 고라니, 너구리는 호미로 쿡쿡 땅을 팝니다. 부엉이와 소쩍새가 입에 문 콩과 씨앗들을 떨어뜨립니다.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마루문이 드르륵 열렸습니다. 할아버지가 나온 겁니다. 동물들은 깜짝 놀라 각자 들고 있던 기구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얼음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뭔,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두리번거리자 나무 탁자 위에 있던 목각인형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아니, 내 작품이 다 어디로 간 거지? 도둑이 든 거야?”

    할아버지가 주변을 살피며 텃밭으로 다가가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동물들이 텃밭 한가운데서 체조를 하다 멈춘 듯 이상한 폼으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허허. 이놈들이 왜 여기에 있담? 그리고 호미와 낫은 왜 또….”

    할아버지는 동물들을 들어 흙을 털고선 원래 제 자리에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연장들을 주워 곳간에 놓았습니다.

    “이런 기괴한 일이… 도깨비의 짓인가?”

    가만 보니 달빛 아래에 텃밭이 가지런히 일구어져 있고 잡초도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다음날 할아버지는 마당 나무 의자에 앉아 용주 인형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거의 완성이 된 용주의 모습. 용주가 입을 헤 벌리고 뛰어가는 모습입니다. 벌린 입에는 이빨 하나가 빠져 있습니다.

    “요요 개구쟁이 녀석. 허허허.”

    할아버지는 깎은 도령을 보며 연신 웃음을 짓습니다. 이 목각 인형은 용주가 놀러오면 선물로 줄 생각입니다. 거친 부분을 싹싹 사포질 하자 매끄러운 도련님이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용주는 새, 동물들과 함께 나란히 마당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점심밥을 먹고 누워서 TV를 보고 있습니다. 마당에 있는 목각 용주가 팔을 삐걱 움직이더니 탁자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습니다.

    “이하! 몸 좀 풀어볼까?”

    용주는 마당을 두 바퀴 신나게 돕니다. 그리고 마루문을 열고 들어가 안방 문을 똑똑 노크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누구요?”

    문이 휙 열리더니 용주가 웃으며 들어옵니다.

    “아니, 용주 아니냐?”

    용주는 말없이 할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할아버지는 마루문을 열고 마당을 보았습니다.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습니다. 목각 용주의 자리가 비어 있을 뿐입니다.

    “얘야, 너 혼자 온 게냐?”

    용주는 손가락으로 집 아래를 가리켰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엄마 아빠가 저 아래서 천천히 오고 있다고?”

    용주가 할아버지의 품을 파고듭니다. 할아버지는 용주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비빕니다. 집안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습니다. 용주는 할아버지 팔에 매달리며 장난을 칩니다. 할아버지가 용주 이마에 군밤을 주자, 용주가 깔깔대며 이불 위를 뒹굽니다. 할아버지도 모처럼 크게 웃습니다. 용주가 빠진 이를 내보이며 장난을 치니 할아버지는 몸이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용주가 할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줍니다.

    “어이구, 시원하다. 그래 꼭꼭 주물러 봐.”

    용주는 조막만한 손으로 꾹꾹 주무릅니다. 할아버지가 미소를 머금고 깜빡 잠이 듭니다. 용주는 조용히 방을 나와 마당으로 달려가더니 나무 탁자 위에 폴짝 올랐습니다. 입을 헤 벌려 빠진 이를 내보인 채로 말이죠, 할아버지가 눈을 뜨니 용주가 보이지 않습니다. 집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안 보이자, 할아버지는 다급히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용주만 내려 보냈냐고 물었습니다. 며느리는 영문을 몰라 말합니다.

    “아버님, 무슨 말씀이세요? 용주가 시골집을 가다니요?”

    “용주가 여기 와서 놀다 갔다니까 그러는구나.”

    “용주는 학교에서 집에 왔고요. 아까 놀이터로 갔어요.”

    “어… 그, 그러냐?….”

    “아버님, 괜찮으세요?”

    할아버지는 전화를 끊고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마당을 거닐며 목각 인형들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갸우뚱하며 용주와 새와 동물들을 찬찬히 만져봅니다.

    “며칠 전 밤에는 누군가 밭을 갈고, 먼 데 사는 용주가 놀다가고… 내가 꿈을 꾸는 건가….”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들어갔습니다.

    저녁 무렵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은 아주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용주가 내려갔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혹시, 치매 걸리신 거 아니에요?….”

    “무슨 치매야? 허허.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야. 농담.”

    “정말 농담이시죠?”

    “그래, 그래. 용주 잘 있나 궁금해서 전화한 거라고.”

    “어휴, 아버지도 애들처럼.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할아버지가 껄껄 웃자 아들도 비로소 안도하며 웃었습니다.

    “아버지, 다치셨는데 못 내려가서 죄송해요.”

    “뭐, 크게 다친 게 아니라 조금 삐끗했어.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다.”

    “이번 주말에 식구들과 같이 내려갈게요. 가서 하룻밤 잘게요. 아버지.”

    “그래, 그럼 오너라.”

    밤이 깊습니다. 부우우~ 소쩍쩍 소쩍~ 어둠속에 밝은 눈들이 비칩니다. 마당에 있던 새와 동물들이 눈알을 굴리더니 자리를 툴툴 털고 내려옵니다. 고라니가 말합니다.

    “아, 뻐근해. 이젠 숲으로 돌아갈 시간!”

    소쩍새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간다고 섭섭해하시진 않겠지? 정성을 다 들이신 건데.”

    용주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가 생명을 얻어 정령이 되었으니 숲으로 가야지.”

    용주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새와 동물들은 할아버지 방을 향해 큰절을 하고 숲으로 돌아갑니다. 부엉이와 소쩍새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자 숲에서 부우우 소쩍쩍 소리가 울립니다. 눈빛이 껌뻑이는 숲으로 동물들이 들어가자 웅성웅성하다가 흩어집니다. 용주는 달빛 마당을 뛰어다니며 새와 동물들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무 탁자에 휙 올라가 뜀박질 자세로 굳어집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받침대 위가 깨끗이 비워져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주변을 살피며 넋 나간 얼굴을 했습니다.

    “아니, 다 어디로 간 게야? 도둑이 들었나?.. 이 마을엔 도둑이 없는데.. 더구나 돈도 안 되는 나무 인형을… 허허, 해괴한 일일세….”

    할아버지는 마당에 하나 남은 목각 용주를 들었습니다.

    “그래, 네가 곁에 남아주었구나. 역시 우리 손주밖에 없다….”

    목각 용주는 이 빠진 얼굴로 할아버지를 보며 헤 웃고 있습니다.

    그날 오후 용주네 가족이 왔습니다. 용주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마당으로 뛰어 들어 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용주를 맞이합니다. 용주의 윗니는 새로 났지만 이번엔 아랫니가 빠져 있습니다. 마당이 휑합니다. 용주가 멀뚱한 눈으로 묻습니다.

    “할아버지, 여기 새하고 너구리 다 어디 갔어요?”

    “오늘 아침에 다 사라졌지 뭐냐?”

    “예?”

    “산 도둑이 든 건지 나도 모르겠구나.”

    용주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어쩌면 동물들이 숲으로 돌아갔을지 몰라요. 정령이 되어서요.”

    할아버지는 용주의 말을 가만히 듣자 문득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도둑이 들었다면 슬픈 일이잖니? 네 말대로 녀석들이 숲으로 돌아간 거로 믿기로 하마. 허허허.”

    아빠와 엄마가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아들 내외를 맞아주었습니다.

    용주가 마당에 빈 나무 탁자를 둘러보며 걷다가 자기의 인형 앞에 섰습니다.

    “엉?… 이건 뭐야?”

    용주가 바짝 다가가 눈이 빠질 듯이 목각 용주를 바라봅니다. 고개를 하늘을 향해 쳐들고서 헤 벌린 입. 쏙 빠진 이 하나, 겅중겅중 뜀박질하는 자세. 용주가 목각인형에 손을 대자 인형이 살짝 움찔합니다. 용주가 놀라 손을 뗍니다. 인형은 그대로 서있습니다.

    “어? 너, 너….”

    용주가 빠진 이를 드러내며 헤헤 웃기 시작합니다. 두 명의 용주가 서로 바라보며 웃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커지면서 마당에 가득합니다. 이때 돌개바람이 휘잉 불며 마당을 쓸어가자 주변 숲이 수런거립니다. 점점 숲 전체로 번지더니 한바탕 술렁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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