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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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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를 찾아서] (10) 고령가야(古寧伽倻)

낙동강 요충지에 건국했지만 짧은 역사로 잠들다
경북 상주시 함창읍이 도읍지로
수로왕 셋째동생 고로가 건국

  • 기사입력 : 2017-09-1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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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상주시 함창읍은 낙동강 중류에서 남해에 이르는 가야의 권역 중 최북단에 위치한 고령가야(古寧伽倻)의 고도(古都)다. 이곳에서 하류로 고령(대가야) 성주(성산가야)는 경북에 있고 김해(가락국) 함안(아라가야) 고성(소가야)은 경남에 있어 6가야는 낙동강 연안 따라 700리의 장사형(長蛇形)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고령가야의 도읍지 함창은 험준한 조령(鳥嶺)으로 인해 백제와 경계를 이루고 낙동강의 장원(長源)으로 가야제국과 통하는 길목에 있다. 이러한 요충은 명승(名勝)과도 상통해 양택(陽宅)과 음택(陰宅)을 한데 모은 왕도(王都)가 됐다. 지금의 상주시는 조선시대의 상주목(尙州牧)과 함창현(咸昌懸)이 통합된 곳이다. 상주목은 조선시대까지 경주와 더불어 경상도의 도 (道)이름을 대표할 만큼 큰 고을이었다.

    고령가야는 삼국유사 5가야조(5伽倻條)와 삼국사기 지리지(地理志) 상주·고령군조, 그리고 6가야국사실록(六伽倻國事實錄)에 이름이 전한다. 구체적인 사회 실상을 살펴볼 자료는 없고 다만 그 위치와 연대만 추정할 뿐이다. 6가야국사실록에 고령가야는 김해 가락국(駕洛國)이 건국하던 해인 서기 42년 수로왕의 셋째동생 고로왕(古露王 재위 115년)이 나라를 세운 후 2대 마종왕 (摩宗王 재위 65년)을 거쳐 3대 이현왕(利賢王 재위 35년)까지 215년간 이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고령가야의 마지막 왕 이현왕은 신라 12대 첨해왕(沾解王)이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오자 다른 가야국들과 연합해 대치하다 힘이 부쳐 김해로 도읍지를 옮겼다고 한다. 이처럼 6가야 가운데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고령가야는 실체를 입증할 문헌이나 유적이 별로 없다.

    도읍지도 함창(咸昌)이라고 주장하는 문헌적인 학설과 지리를 고려한 진주(晋州)설로 갈려 있다. 먼저 가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 삼국유사 5가야조에 고령가야를 함녕(咸寧, 咸昌의 별칭)으로 기록하고 있는 본조사략(本朝史略)에는 가리현(加利懸)이라 했다. 가리현이란 통일신라시대 때 성산군(星山郡, 지금의 경북 고령군 성산면 일대)을 말한다.

    고령가야를 지금의 진주 지방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지만 고령가야는 경북 상주시 함창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에서 건국된 가야제국 중의 한 왕국으로 보는 게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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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에 있는 고령가야 태조왕릉.



    ▲함창읍에 태조왕릉·왕후릉

    상주시 함창읍은 영강과 이안천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남부와 서북부는 해발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뤄져 있다. 지리적으로 왕도가 들어설 여러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듯하나 옛 고령가야가 이곳에 있었음을 입증할 유적이나 유물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가야유적으로 전해오는 왕릉과 몇몇 성곽이 함창 주변에는 더러 있다. 당시 신라 백제 가야가 각축을 벌였던 당시 상황에 따라 자연히 국방을 위한 성곽이 있었고 그 성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상주시 낙동면에 성밑, 성골, 성둑 등으로 불리는 자연마을 주변에 쌓아졌던 가야성을 비롯해 낙동강과 위강(渭江)이 합류하는 상안 (上岸) 능선 따라 축조한 봉황산성(鳳凰山城)과 이안리 덕봉(德峯) 3면에 쌓은 토성이 있다.

    또 남쪽의 오봉산(五峯山)에도 옛성이 있으며 성내산(城內山)을 성안에 두고 주위를 에워싼 도성과 숭덕산(崇德山)을 등지고 이안천을 따라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해 쌓은 왕성(王城)이 있다. 그리고 조령(鳥嶺) 아래 마원(馬院) 뒷산의 마고산성(麻故山城)과 후방에 마성의 뒷산 중복에 쌓은 고모산성(姑母山城) 등이 주로 백제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은 성이라고 전해온다.

    상주시 함창읍 증촌리에는 고령가야국 태조 왕릉이라고 전해오는 무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함창현편 능묘조 (陵墓條)와 함창현지(咸昌懸誌)에 ‘가야왕릉이 현 남쪽 2리에 있고 오랜 세월 전해오며 본 현의 김씨가 그 왕의 후예로 능에 비를 세우고 수호하며 춘추로 대제를 봉행하고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왕릉은 1000여년간 부근 주민들이 고령가야 왕릉이라며 구전돼 왔었다. 1592년 조선 선조 25년에 능 밑 층계 앞에 파묻혀 있는 묘비를 발견해 고령가야 왕릉임이 확인됐다고 한다. 그후 1712년 숙종 38년 왕명에 의해 묘비와 석물을 설치했다.

    능 입구에 들어서면 고령가야국사적비가 서 있고 그 옆에 재사(齋舍)가 있다. 재사 옆 홍살문을 지나면 태조왕릉 입구문이 나온다. 그 위에 거대한 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능에는 석마, 석양, 문인석, 장명등 등 석물로 치장돼 있으며 ‘고령태조왕릉(古寧太祖王陵)’이라고 음각된 비석이 있다. 인근 주민들은 이 능을 서릉이라 하고 동쪽으로 200m 지점에 있는 왕후릉을 동릉이라 부르고 있다.

    능의 앞과 옆에는 숭녕전(崇寧殿)과 만세각(萬歲閣), 전사청(典祀廳), 관리소 등이 있고 자금문(紫金門), 가야문(伽倻門), 승무문(承武門) 등의 크고 작은 문과 사적비와 공적비 등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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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가야 태조왕릉에서 동쪽으로 200m 지점에 있는 왕후릉. 동릉이라고도 한다.



    ▲왕도(王都) 걸맞은 지명 많아

    한편 함창읍에는 옛 고령가야의 왕도(王都)에 걸맞은 지명이 곳곳에 있다. 대가산(大駕山)은 현지(懸誌)에 ‘대가산 가야왕 유행간차 고 명지 (大駕山 伽倻王 遊幸干此 故 名之)’라고 적혀 있어 대가산은 가야왕이 유람하던 곳임을 알 수 있고 군(郡) 북쪽 2리에 있는 상염지(上鹽池) 또한 가야왕이 거닐던 곳이라고 한다.

    왕도동(王都洞), 누교(樓橋), 천제(天祭)를 올린 국사봉(國祀峯), 즉위 의식을 올린 승통산(承統山), 도읍의 동산인 덕봉(德峯), 군사들을 통솔하던 통사대(統師臺)가 있었던 국사봉(國師峯)이 있고 왕도의 마을이었던 증촌(曾村) 구향(舊鄕) 신덕(新德) 등 촌(村) 이름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가야의 고도임을 말해주고 있다.

    가야시대 고분은 함창읍 신흥리 뒷산 오봉산의 북쪽면에 흩어져 있다. 이 오봉산은 도읍의 안산(案山)으로 고분들은 모두 북향이며 산정의 다섯 봉우리가 거의 일(一)자 형을 이루고 있다. 고분들은 대부분 도굴됐거나 숲이 우거져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곳에는 500~600기의 고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고분들이 가야고분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 외에 도굴될 때 표출된 몇 가지 묘제와 유물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첫째로 수혈식(竪穴式) 석곽(石槨)과 개석(蓋石) 등으로 보아 가야시대의 묘제임이 분명하고 둘째로 고배(高杯) 등 토기 조각들이 가야시대 토기이기 때문이다.

    고령가야는 구체적인 사회 실상을 살펴볼 자료는 없지만 각종 사료에 나타난 위치만으로도 그 실체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상주, 문경시 일대에서는 아직까지 가야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온 적이 별로 없지만, 언젠가는 잠자고 있는 수많은 고분 등에서 가야의 비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

    글·사진= 이점호 전문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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