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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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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를 찾아서] (3) 인도에서 수로왕에게 시집온 허왕후

2만5000리 바닷길 건너와 운명적인 만남

  • 기사입력 : 2017-07-1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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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가야땅 김해는 가락국의 시조대왕 수로(首露)와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黃玉) 간의 국제결혼이 이루어진 낭만적인 고장이다. 허 공주는 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2만5000리가 넘는 머나먼 바닷길을 항해해 김해까지 왔다.

    이는 비록 설화에 기초한 로맨스이지만 초기의 가야국이 남방제국과의 해상무역활동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로왕과 허 공주의 결혼은 김해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온 선주민들과 유입세력들이 연맹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미화된 설화라는 견해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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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의 배가 무사히 도착하도록 횃불을 올려 등대 역할을 한 망산도(望山島). 바위섬인 망산도는 썰물 때는 물이 빠져 뭍과 연결된다.



    인도 아유타국 공주의 도래(渡來)에 대하여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는 가락국 건국 7년째인 서기 48년(단기 2381년) 음력 7월 27일 허황옥이 하늘의 명을 받아 2만5000리의 바닷길을 건너 수로왕에게 시집오면서 명월산(明月山)의 만전(?殿·장막)에서 첫날밤을 보낸 후 장유치고개(지금의 태정고개)를 넘어 유궁(?宮·휘장을 친 임시궁궐)에서 수로왕과 처음 만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가락국기’는 수로왕은 허 공주를 맞아 유궁에서 이틀 밤을 함께 보내고 8월 초하루 가락궁성으로 돌아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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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산도는 바위가 모두 거북등처럼 갈라진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수로왕과의 운명적 만남

    수로왕과 허 공주의 국제결혼이 이루어진 로맨스의 현장은 어디쯤일까. 하늘의 계시에 따른 운명적인 만남인 이 국제결혼은 설화에 비춰진 현장들이 숱한 세월 속에 묻혀 현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인도를 떠난 허 공주의 배가 이 땅에 도착하자 횃불을 올려 무사히 육지에 닿도록 등대 역할을 한 망산도(望山島)는 지금 창원시 진해구 웅동2동 용원마을 앞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라고 전해져 온다.

    옛날에는 망산도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가운데에 있었으나 지금은 간척사업과 녹산공단 조성으로 육지와 거의 맞닿아 있다. 소재지도 지난 2007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경남에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산 188번지로 바뀌었다.

    백일홍과 잡목으로 우거진 이 바위섬은 썰물 때는 물이 빠져 뭍과 연결되며 밀물 때는 바닷물에 둘러싸인다. 특이한 것은 망산도의 바위들은 모두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 망산도는 지금 시궁창이나 다름없다. 바다매립으로 풍치를 잃은 데다 온갖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나마 간척사업 때 매몰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망산도 동남쪽 70m 해상에는 또 다른 전설의 바위섬인 유주암(維舟岩)이 있다. 쪽박섬으로도 불리는 이 바위섬은 인도 공주가 돌배를 타고 왔다가 파선한 형태라고 이 마을 주민들은 믿고 있다.

    용원마을 뒤 욕망산 자락에는 공주가 배를 댔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부인당(婦人堂) 또는 부신당(婦神堂)으로도 불리는 유주각(維舟閣)에 대가락국태조왕비문태보허씨유주지지(大駕洛國太祖王妃門太普許氏維舟之地)라 새긴 비석이 있다. 매년 음력 3월 열닷새 날 김해허씨(金海許氏) 종손들은 제사를 올린다.

    망산도가 있는 용원지역은 1990년대 초부터 창해상전(滄海桑田)의 대공사가 이루어져 이제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만(灣)을 이루고 있는 신호공단과 용원마을 일대의 광활한 바다가 간척사업으로 묻혀 버렸다.

    공주가 처음 배를 댄 곳인 주포도 잘 알 수 없다. 별포(別浦) 또는 별포도두촌(別浦渡頭村)이 주포촌(主浦村)으로 바뀐 데다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과 경계지점인 현재의 진해구 가주동 주포(主浦:으뜸나루)는 임이 내린 갯가라 하여 지금도 임개로 불리고 있지만 마을 앞은 바다가 아닌 들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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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로왕과 허왕후가 신혼방을 차린 유궁터. 김해시 응달동 태정마을 당산 옆에 있다.



    ▲신방 꾸민 유궁터

    가락국의 백성들은 후일 허 공주가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을 기념해 처음 배를 댔던 별포진 혹은 도두촌을 주포촌(主浦村)이라 하고 비단바지를 벗었던 고개를 비단고개(綾峴)라 하며 붉은 기(旗)가 들어왔던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이라 하였다.

    배에서 내린 허 공주가 산신령에게 폐백을 드린 능현(綾峴)은 어디일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능현은 김해부(金海府)의 남쪽 30리에 있으며 지금의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지사리 신명(新明) 비단치고개라고 적혀 있다.

    옛 지도인 여지도서(與地圖書)의 ‘김해부지국(金海府之國)’에는 능현이 명월산(明月山) 줄기에, 또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에는 낙동강 하구의 바다에 임한 산이 명월산으로 표시돼 있다. 오늘날의 지도와 대조해 보면 명월산은 지금의 보배산이나 옥녀봉 쯤으로 추측될 뿐이다. 따라서 허 공주는 명월산 줄기의 능현에서 장유산(長遊山)의 장유치고개를 넘어 수로왕의 행재소 쪽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명월산에는 수로왕이 서기 144년에 자신을 위해 흥국사(興國寺)를, 왕후를 위해서는 진국사(鎭國寺)를, 세자를 위한 신국사(新國寺) 등 세 원당(願堂)으로 이루어진 명월사(明月寺)를 세웠으나 언제 없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광복 후 이 자리에 흥국사(부산시 강서구 녹산동 명동마을 뒤)란 조그마한 절이 새로 들어섰다.

    흥국사 법당에는 지금 인도 특유의 사왕(蛇王)인 무칠린다를 나타낸 불탑조각이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전설을 가늠할 뿐이다. 또 이 절 마당에는 수로왕이 왕후를 맞이한 곳이라는 ‘가락국태조왕영후유허비(駕洛國太祖王迎后遺墟碑)’가 서 있다.

    수로왕릉을 모신 숭선전의 전지(殿誌)에는 ‘왕후사는 현 김해읍에서 남쪽 30리 지점인 김해군 장유면 응달리 태정마을 뒷산에 있다’라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절은 뒤에 폐사되고 농장(農莊)을 만들었다는 기록만 현재 남아 있을 뿐이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처음 만나 사랑을 이루었다는 김해시 응달동 태정산(胎亭山) 기슭. 수로왕 7대손인 가락국 제8대 질지왕(?知王)은 허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허왕후가 처음 만난 이곳에 왕후사(王后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유궁터도 태정마을의 당산이 있는 곳으로 추정만 되고 있을 뿐이다.

    가락국 어느 왕의 태(胎)를 묻었다는 봉곳한 태봉 아래 마을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유궁터에는 지금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7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수로왕과 인도 공주의 국제결혼 현장을 말없이 지키고 있다.

    글·사진= 이점호 전문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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