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2일 (목)
전체메뉴

[가고파] 개명- 이지혜(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23-09-04 19:32:05
  •   

  • 임신부터 출산 직후까지 가장 공들인 건 아이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특별한 의미를 담으면서도 발음하기 좋아야 했고 너무 흔하지는 않은 이름이었으면 했다. 요즘에는 개명이 흔하지만 줄곧 사용하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고 이후에도 많은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평생 같은 이름으로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불리길 바랐다.

    ▼이름을 바꾸는 작업이 법적, 행정적으로는 간단해졌지만 이것이 사회적인 합의를 필요로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치매’라는 이름을 ‘신경인지장애’, ‘인지흐림증’, ‘인지저하증’ 등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정치권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문턱이 높다. 지자체는 공항, 항만, 도로 등 이름을 두고 타지역과 다툼을 이어가기도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합천 ‘일해(日海)공원’ 명칭 변경 논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치 않았음에도 이름을 바꿔야 했던 역사도 있다. ‘창씨개명’은 민족말살정책을 이어가던 일제가 1939년 모든 조선인들에게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명령한 것이다. 바뀐 이름을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량한 조선인’이라 이름 붙이고 여러 가지 불이익을 줬다. 개명을 통해 조선을 외지가 아닌 일본의 일부로 완전히 합병해 장기적으로 조선의 인력과 자원을 전쟁에 동원하려 했다.

    ▼여권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이름을 ‘처리수’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부 나오고 있다. 정부나 여당이 공식적으로 명칭 변경을 고려하는 단계는 아니라고 못 박았지만 명칭 변경이 전향적인 과정이라는 의견은 계속되고 있다. ‘홍범도 지우기’ 논란 속에서 국무총리는 실전 배치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발언했다.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본질을 흐리거나 그 정신을 폄훼하는 도구가 되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이지혜(정치부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지혜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