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성역할 ‘미투 사태’ 만들었다
여배우가 술 따르고 접대하는 등도내 연극인들, 잘못된 관행 지적“대형 극단 국한된 문제” 선긋기도
- 기사입력 : 2018-02-2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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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연극촌 이윤택 예술감독을 비롯한 국내 연극 거장들의 성추문이 문화계를 강타하자 연극계에서는 분노와 자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미투(#MeToo) 불길이 더욱 거세질수록 그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추세다. 특히 경남 연극계는 김해 극단 번작이 사건까지 불거져 나오면서 모든 구성원들이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도내 한 극단의 연출가 A(53)씨는 이번 사태가 오랫동안 구습처럼 인식됐던 잘못된 성 역할에서 출발했다고 봤다. 그는 “원로 연극인이나 대접해야 할 분이 오면 으레 여배우들을 옆에 앉게 했다. 술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이런 점에 무뎠던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출처= 픽사베이/
또 다른 연출가 B(52)씨는 잘못된 관습을 지적했다. 그는 “손님이 있을 때 여배우를 옆에 앉히는 것은 지금도 관행처럼 계속되고 있다. 예전에는 너무 당연시되던 행위라 이상하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잘못된 행동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돼 있다 보니 잘못이라는 인식조차 흐려졌다는 것이다. 이윤택 예술감독이 사과 기자회견에서 성추행을 두고 ‘관습적으로 이어진’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 연출가는 연극계의 구조적인 부분이 원인이라는 일부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유명한 대형 극단에 한정된 사례다. 이윤택 등 최근 거론되는 연출가들은 국내 유명 극단 실세였고 연극계 전반 캐스팅을 좌지우지하기 할 수 있어 권한이 막강했던 거다”라며 “도내 중소규모 극단은 상주단원이 적어 오히려 배우를 구하는데 애를 먹는다. 물론 연출이 극 전체를 끌고 가는 역할이라 힘이 있는 것은 맞지만 다른 조직에 리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극계를 떠나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불균형한 권력구조 자체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10여년차 도내 극단 여배우 D(44)씨는 “술을 따르게 하거나 강권하는 것, 부적절한 추행 모두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으니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온 것 같다. 당연시되던 이런 구습과 인식을 타파해야 한다”며 “왜 그랬냐, 처신을 잘했어야 한다 등과 같이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지워 침묵을 더 키우는 인식도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력 20여년의 여배우 B(47)씨는 남성들 위주의 분위기에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스스로 여성성을 지우려 많이 노력했다. 남자들이 손을 잡거나 하면 일부러 같이 손잡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다소 불쾌한 느낌이 있을 때에도 하지 말라고 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연극인들은 이번 사태를 책임있게 마무리짓는 것만이 연극계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여배우 D(39)씨는 “관객들이 많이 줄겠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마무리가 돼야 관객들을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이 연극계 구성원들이 좀 더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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