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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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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화수분의 정석- 정성화(남해군 창선면 부면장)

  • 기사입력 : 2024-01-24 19: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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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내린 무난한 오전 시간이었다. 오육십 년은 함께한 듯 애써 말하지 않아도 온화함이 닮은 노부부가 행정복지센터로 찾아오셨다. 할머니는 진작부터 맘먹었던 일이라며 100만원을 은밀히 건네신다. 면장님은 감사한 마음에 차 한잔 하고 가시라 권했다. 나란히 앉는 것조차 어색해하시는 두 분이었지만, 받은 유자차 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시면서 할머니가 말문을 여셨다.

    “요새 텔레비전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참 많더라. 나는 고사리만 할 때부터 여태껏 일만 하며 수십 년을 살았네.” 그러시며 당신의 마을에 고사리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군에서 도와 준 덕에 몸 성할 때까지는 움직일 거라고 하신다. ‘그 덕에 아들딸도 반듯하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 이 추운 겨울 힘든 사람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며 노동의 삶마저 지극히 온정으로 풀어내셨다.

    몇 해 전, 필자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를 ‘미니멀 라이프’로 설정했던 기억이 있다. 가난에도 모으고, 허름해도 아끼며 살았던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물건에 집착하며 산다. 그러다 보니 소유와 소비에 대한 관점을 재평가하고, 단순하고 꼭 필요한 것만 곁에 두겠다는 의미로 한동안 설정하고 지냈다. 돌이켜보니 나의 다짐은 다짐이었을 뿐이었다. 평생 흙과 고사리 농사로 거칠어진 두 분의 손 앞에, 남의 딱한 사정을 넘기지 못하는 삶의 지침에 무작정 겸손해졌다.

    작은 지역의 면서기로 근무한 스무날 동안, 화재 가정을 위해 주민자치회의 발 빠른 기부 700만원, 어려운 이웃돕기 30만원, 귤 한 박스 사부작 두고 가는 이장님, 간식으로 배달된 단장님의 붕어빵, 익명의 화분 나눔까지 대단한 마음이 창선도에 범람하고 있다. 이는 화수분의 정석이다.

    비 오는 날, 행정복지센터로 찾아든 노부부의 심성이 더치 페이(Dutch Pay) 방식으로든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었으면 하는 현장의 생각이다. 필자도 그분들의 대단한 마음처럼, 오는 4월 26일부터 이틀 동안 창선생활체육공원에서 개최될 도내 유일한 ‘제6회 창선고사리 축제’를 성심을 다해 도와야겠다.

    정성화(남해군 창선면 부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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