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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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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

  • 기사입력 : 2023-11-27 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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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가을이다. 아니 겨울 초입이다. 올해도 한 달 남짓 남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늘 느끼는 심정이지만, 요즘은 유난히 어딘가로 밀려서 아득하게 멀어지는 기분이다. 아직 단단한 생활의 기둥 하나 세우지도 못하고, 몸 안에서 뼈대들이 하나씩 빠져나와 새벽 찬 서리에 젖거나 꽁꽁 얼어서 고체화되는 느낌이다. 불안하고 서글픈 마음이다. 나만 이러할까?

    거슬러 오르면, 1978년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잔 임스가 ‘가면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이러한 심리를 분석했다고 한다. ‘비교적 높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유능하거나 창의적이지 못하다고 믿으며, 자기 능력이 남들보다 항상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즉, 본인이 이룬 객관적인 지위와 상당한 역할이 모두 거품이고, 나아가 스스로 일종의 사기꾼(Imposter)이라고 느끼는 무기력한 감정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실제로 개방적이라는 미국에서조차 국민의 70%가 이 증후군을 경험했거나 현재진행형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부터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까지 아주 심하게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나친 겸손도 미덕인 사회와 무한 경쟁의 무대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 홀로 분투하는 당신들이 눈에 선하다. 자신이 거둔 성과를 과소평가하고, 자기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보다는 외부의 상황 혹은 단지 행운과 우연 때문에 어떤 결과물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속임수’가 언젠가 드러날 것이라는 끊임없는 불안과 막연한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의심을 멈추고 이 마음의 함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많은 심리학자가 조언하는 것을 들어보자.

    진정한 자신의 최고 모습이 무엇인지 몰라도 괜찮다.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라. 사적인 모임이라도 좋다. 그곳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먼저 말하라. 자신의 불안감, 취약성, 상처에 대해 편하게 털어놓아라. 함께 공감하며 연대와 소속감을 가져라.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있음을 피부로 느껴라. 나아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스스로 관대해지라고 한다. 무엇보다 실패와 실수에 대한 방어기제로서의 인식을 바꿔보라고 한다.

    내 주변에 ‘가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 흔하다. 문제는 자신이 그러한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충분히 근사하고 의미 있는 문제작을 계속 발표하고 있으나, 정작 자신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은둔하거나, 심지어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자기 작품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과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또한 자영업자나 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정말로 충분히 잘 하고 있으며, 동급 최강인 상태에도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경우다. 일 년에 웃는 얼굴을 몇 번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항상 우울한 상태다. 인상은 늘 구겨져 있어 주변 사람들이 더 주름지곤 한다. 돌이켜보면 가면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다. 살면서 적당한 가면이 필요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진정한 자기 반성으로부터 지나친 오만과 겸손을 버리고 당당한 나의 모습, 건강한 참모습을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시절이다. 그러나 어쩌리오. 나 아니면 그 누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겠는가. 옷가슴에 파고드는 찬바람을 견디다 보면, 무슨 축복처럼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그날이 곧 오리라고 믿어 의심하지 말자.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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