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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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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도공’ 백파선의 궤적] ⑨·끝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까

종합연구로 정확한 역사 밝히고 양국 문화교류 이어가야

  • 기사입력 : 2023-10-30 21: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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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파선은 임진왜란 당시 남편과 함께 일본에 끌려간 인물로 훗날 일본 아리타 지역 도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다수의 예술가를 이끈 조선의 유일무이한 여성 지도자임에도 그에 대한 연구와 조명은 아직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남신문은 앞서 8회에 걸쳐 ‘조선여도공’ 백파선의 궤적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이를 통해 백파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정보들을 바로잡고, 여성 지도자로서 백파선의 의의를 재정립했다. 또 백파선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김해와 백파선이 활약한 일본 아리타에서 그의 흔적을 찾고자 노력했다. 기획의 마지막 편에서는 전문가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앞으로 추구해야 할 학술연구 방안과 문화교류 방안을 모색해 본다.

    일본 아리타 보은사(호온지) 경내에 있는 백파선의 비(만료묘태도파의 비) 앞 바닥에 정체불명의 구멍 뚫린 판이 떨어져 있다. 판에 적혀 있는 글자는 ‘深海(심해)’. 심해는 백파선의 고향으로 현재는 김해로 추정할 뿐이다. 오늘날 ‘예술가 무리를 이끈 여성 지도자’ 백파선을 적극적으로 선양하기 위해선 백파선의 고향 ‘심해’가 어디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일본 아리타 보은사(호온지) 경내에 있는 백파선의 비(만료묘태도파의 비) 앞 바닥에 정체불명의 구멍 뚫린 판이 떨어져 있다. 판에 적혀 있는 글자는 ‘深海(심해)’. 심해는 백파선의 고향으로 현재는 김해로 추정할 뿐이다. 오늘날 ‘예술가 무리를 이끈 여성 지도자’ 백파선을 적극적으로 선양하기 위해선 백파선의 고향 ‘심해’가 어디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다양한 학문분야 활용해 종합연구를

    1차 사료 내용 명확히 밝히기 위해선
    다른 학문분야까지 연구·비교분석
    학자들 연구 공유하는 학술포럼 필요


    ◇다양한 학문 분야 활용한 종합연구 필요= 그동안의 백파선에 대한 연구는 지역 향토사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다뤄져 왔다. 이 또한 1차 사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되다 보니 철저한 고증보다는 상상과 추측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과정에서 ‘심해(深海)’로 표시됐던 백파선의 고향이 ‘김해’로 확정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백파선의 남편이 ‘김해 김씨의 김태도’로 불리게 되는 오류도 발생했다.

    지난 2020년 백파선에 대한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노성환 울산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는 “역사 속 인물은 역사적인 사실을 정확히 밝혀내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밀도있는 연구 없이 위인들을 성급하게 고향 출신으로 선점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지자체가 먼저 학술연구를 지원하면서 차분하게 준비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또 “임진왜란 이후 한 여성이 남성들로만 구성된 조선도공들을 이끌었다는 것은 두 사료에 명시된 사실”이라며 “백파선은 우리나라 여성사에서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인물이기에 도예를 넘어 이런 측면에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여성학 측면에서 백파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김선미 전 백파선연구소 소장(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도 노 교수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종합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전 소장은 “백파선 후손들이 남긴 비문에 백파선에 대한 묘사가 돼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다른 학문을 이용해야만 명확히 해석 가능하다”며 “백파선에 대한 역사적 기록에 대한 접근은 물론 그 시대 여성의 생활 전반, 도자기 유물의 비교 등 종합연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에 그려져 있는 백파선 벽화.
    김해시 상동면 대감마을에 그려져 있는 백파선 벽화.

    실제로 근래에는 사료를 고증함에 있어 다른 학문을 이용하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는 ‘보조과학으로서의 역사’라 말하는데, 1차 사료에 담긴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세부 주제에 맞는 학문을 이용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백파선이 귀걸이를 한 흔적이 있다는 기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과 일본의 장신구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또 백파선의 고향을 명확히 알기 위해선 백파선 일가가 일본 가마터에서 생산한 도자기 유물과 고향으로 추정되는 김해 일대 유물간 비교분석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종합연구는 아직까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결국 학자들이 한곳에 모여 연구 내용을 공유하는 학술포럼 형식의 자리가 요구된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곳은 김해시다. ‘2024년 동아시아 문화도시’에 선정된 김해시는 국제 문화교류를 통한 ‘국제도시 김해 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월 일본 백파선갤러리와 업무협약을 맺고 백파선을 중심으로 한 도예문화 네트워크 구축과 도자자원 교류 등을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이영준 김해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 센터장은 “현재 백파선 관련 연구는 굉장히 일부에 국한돼 있고, 앞으로 폭넓게 연구돼야 객관적 실체로의 백파선이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며 “한일 양국의 백파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초청해 종합적인 토론을 나누는 자리를 긍정적으로 준비해 보겠다”고 말했다.




    도예분야 문화교류 범위 넓혀나가야

    조선도공 전체로 교류 주제 확대하고
    ‘여성’ 키워드로 전시·학술행사 추진
    민간 중심 교류, 행정으로 나아가야


    ◇범위 확장해 문화교류 추진해야= 백파선의 고향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특정 지자체가 백파선을 주제로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백파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임진왜란 당시 납치됐던 조선도공 전체를 주제로 하거나 여성을 주제로 문화교류를 이끌어가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백파선의 고향을 자처한 김해 상동면 대감마을. 이곳에서 오랜기간 백파선 알리기에 나서고 있는 이봉수 대감마을 만들기 추진위원장은 과거에는 ‘백파선’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감물야촌’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감물야촌은 조선시대 실존했던 김해지역 대규모 자기소를 말하며 상동면 일대에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봉수 위원장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납치됐던 백파선을 포함한 감물야촌에 있던 도공들을 모두 기릴 필요가 있다고 보고 감물야촌으로 범위를 넓혀 문화적 사업을 펼치려고 한다”며 “이런 과정에서 발굴조사나 학술연구로 백파선에 대한 정보가 명확해진다면 자연스럽게 백파선이 더 돋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해시는 ‘여성’을 키워드로 문화교류를 이어갈 계획이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내년 동아시아문화도시 국제교류사업의 일환으로 한·중·일 3국의 도예가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면서 서로 영감을 나누는 전시·학술행사·시민참여 행사 등을 준비 중이다. 또 여성 도예가 포럼을 계획해 백파선에 대한 내용을 담아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정은 관장은 “도예 분야는 과거에도 여성들의 작품 활동 자체가 쉽지 않았고 최근까지도 역사나 활동이 남성 도예가를 중심으로 조명돼 여성 도예가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며 “향후 진행될 국제교류 사업에는 여성 도예가들을 다수 참가시키고 집중 조명하면서 백파선을 기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화교류 행정까지 발전해나가야”= 현재까지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김해와 아리타의 문화교류는 민간이 중심이 돼 진행돼 왔다. 민간은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라지만, 행정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가장 앞서 문화교류를 추진한 곳은 김해도예협회다. 김해도협은 9년여 전부터 아리타 도예가 측과 소통하며 교류전 등 문화교류를 주도적으로 이어왔다.

    김정태 김해도예협회 이사장은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면 꾸준히 각 지역을 방문하며 교류를 이어왔다”며 “김해와 아리타 모두 젊은 도예가가 줄어드는 현실에 직면해 있는데 문화교류가 그런 문제를 극복할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문화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아리타는 작은 마을이기에 김해시보다는 진례면이나 상동면 차원에서 아리타정과 교류를 맺고 지원을 이어 나가는 게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광옥 경남도예협회 회장도 “도예는 경남 안에서도 지역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교류가 중요하다”며 “백파선을 매개로 경남, 김해와 일본, 아리타 도예가들의 교류가 이어진다면 예술 진흥과 성장에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다만 지자체 간의 직접적인 문화교류에 대해서는 김해와 아리타 모두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마츠오 요시아키 아리타정 정장은 한국에 대해 고맙고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현재 이뤄지고 있는 간접적인 문화교류를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했다.

    마츠오 정장은 “한국 역사와 관련이 깊은 아리타는 한국의 도자기술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며 “복잡한 정치적 요인들로 인해 아리타 행정에서 무언가를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백파선갤러리가 김해와 한국의 도예협회와 교류하고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 백파선의 역사를 드러내고 문화교류 측면에서 더욱 이야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은숙 김해시 관광과장 또한 “아직까지 백파선에 대한 자료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 시가 적극적으로 백파선을 전면에 내세워 문화교류를 추진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며 “백파선을 주제로 민간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으며, 시 차원에서는 백파선의 실체를 규명할 가마터 발굴작업이 우선이라 보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고 답했다.

    글·사진=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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