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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아부지의 시락국- 이장원(영남지역문화전문가협회 회장)

  • 기사입력 : 2023-10-23 19: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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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의 아부지는 창원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셨던 한국화 작가이신 도원 이창호 화백이다. 아는 분들에게는 ‘도원선생님’으로 불리는 멋진 분이셨다. 사실 필자를 중국에 보낸 것도 아부지셨는데, 필자가 2006년 중국에 가서 5년간의 현지 생활을 하면서 문득 ‘앞으로의 시대에는 문화예술밖에 없다’라는 비전이 진하게 들어와 버렸고, 이후로 필자의 모든 관심이 모두 그쪽으로 쏠리다 보니 이렇게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한국에 나와서 그저 막연한 비전으로 아버지의 작품들을 굿즈로 만들어 보겠다고 열심히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마추어도 안되는 주제에 프로인 아부지를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억지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했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죄송한 마음이다. 그렇게 참 많은 시도를 했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없는 돈을 길바닥에 뿌리면서 신기루를 좇았던 시절이었다.

    원래 돈을 벌고 뭔가를 이루려면 아이템, 타이밍, 인연, 자금, 공간, 기획력, 홍보, 개념 등 참 많은 것들이 맞물려서 맞을 때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필자는 그동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주로 했고, 본인이 발견한 콘텐츠의 발전 가능성을 발견하면 전후좌우 재지 않고 그냥 직진했던 것 같다.

    게다가 필자가 그렇게 힘들게 시도하다가 손을 놓으면 몇 년 뒤에 다시 그 콘텐츠가 활성화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필자가 기획하는 과정에서 시기와 현실성이 결여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하고 있는데, 그래도 요즘 뭔가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 같아 살짝 설렌다. 2015년 통영에 와서 통제영 주차장 앞에 갤러리 ‘도화’라는 기념품숍을 오픈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통영살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가게에서 주로 아부지의 작품들과 아트상품을 선보였지만 사실 별로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서피랑에서의 활동이 어느 정도 알려지고 희미한 방향이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부모님을 서피랑으로 전입시켰다. 하지만 통영이 별로 와닿지 않으셨는지 부모님은 한 달 정도 지나고 다시 창원으로 주소를 옮겨가셨다.

    그 당시 아부지를 모시고 통영의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그중에서 특별한 공간으로 남게 된 곳이 바로 아부지와 시락국을 먹었던 서호시장의 ‘원조시락국’이라는 가게이다. 왜냐하면 함께 식사하러 갔다가 필자의 요청으로 아부지가 방문하신 기념으로 그 가게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두셨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8년 2월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데 솔직히 너무 상실감이 커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날 아침에 아부지께서 전화를 주셔서 ‘입춘부를 적을 건데 몇 개나 필요하냐?’고 물으셨는데, 갑자기 오후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으니 전혀 믿기지가 않았고 그렇게 허무하게 아부지를 보내고 한참을 헤매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했던 모든 활동들이 아부지와 함께 할 수 있는 판을 깔기 위한 것이었는데, 마치 모든 게 사라진 것처럼 나침반의 바늘이 방향을 잃고 빙빙 도는 그런 기분이었다.

    이후로 아부지가 생각나면 원조시락국 가게에 가서 그 그림이 그려진 자리 아래에 앉아서 아버지를 만난다. 당시 아부지에게 요청해서 억지로 남긴 흔적이 이제 필자에겐 특별한 의미로 남았다. 그렇게 아부지의 시락국은 나에게 위로를 주는 큰 선물로 남아있다. 우리는 이렇게 추억을 하나씩 꺼내먹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게 아닌가 싶다. 내일은 아침에 아부지를 만나러 시락국을 먹으러 가야겠다.

    이장원(영남지역문화전문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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