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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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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와 대화 땐 ‘경청·공감·인정’을

치매환자가 바라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환자 스스로 문제 해결·성장 도와주는 인정치료

  • 기사입력 : 2023-08-07 08: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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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의 표정·말·행동에 의미 분석보다 공감·인정

    장점 칭찬하고 눈높이 맞춰 경청하는 자세 중요

    치매환자와 소통 위한 ‘인정치료’

    인정치료(Validation Therapy)는 치매 환자가 바라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치료입니다. 환자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얘기를 통해 스스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도록 도와줍니다. 나오미 페일(Naomi Feil)은 이 방법을 통해 치매 노인들의 문제를 해결해 온 상담사입니다. 상담사는 경청과 공감을 통해 상담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나오미 페일의 인정치료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매 환자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나오미 페일 인정치료의 풍부한 내용을 알기 원하시는 분은 그의 책 ‘The Validation Breakthrough를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1. 꿈꾸는 사람들- 중등증 치매로 환각이 보이는 경우

    막 입원한 70대 할머니로 모르는 젊은 남자가 밤마다 병실로 찾아와 환자를 협박한다고 한다. 여기는 병원이고 코로나로 인해 직원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다음날에도 그 남자가 왔다 갔다며 불안해했다. 그 젊은 남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경비를 세웠고 붙잡아서 경찰서로 보냈다고 했더니 종종 다시 나타나는 경우는 있었으나 이전보다 덜 보이게 되었다.

    치매 환자가 보는 세계는 꿈과 같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얼굴도 친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낯선 장소가 내 집으로 생각되며 순식간에 시간이나 장소를 건너뜁니다. 기억을 잃고 눈이 희미해지고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마음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곳으로 환자를 데리고 갑니다. 그는 병원에 있으면서도 자기 집으로 생각하고 기억나지 않는 가족이나 희미하게 보이는 사물이 도둑으로 보여 무서워하고 다른 사람도 아들로 보이면 반가워서 웁니다. 그의 두려움, 보고 싶은 마음이 표정, 말,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이유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알 수 없더라도 분석하지 않고 공감하며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노 없는 뱃사공-중증 치매로 자기 이름만 아는 정도

    침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보내는 80대 후반 환자로 자기 이름 정도만 기억하신다. 대화는 가능하나 엉뚱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하신다. 볼 때마다 주치의를 못 알아보니 매일 소개를 하면 낯이 익다고 반가워한다. 현재 있는 곳을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고 자주 놀러오라고 하신다.

    성장은 일생을 두고 일어납니다. 감각과 기억이 쇠퇴하고 외부적 자극이 줄어들면 내면의 성장 요구가 더 두드러집니다. 보다 깊은 곳으로 그리고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미뤄두었던 성장의 계단을 하나씩 딛고 올라서야 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노 없는 뱃사공이 되어 그의 성장을 도와줍니다. 믿을 수 있는 진실한 벗으로 그의 말을 판단없이 들어주고 그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줍니다. 모든 인간은 성장하며 성장에 필요한 모든 자원은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의 얼굴이 밝아지고 표정이 편안해집니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도 행복해집니다.

    3. 생각은 있듯 없듯

    치매 환자와 대화를 나누려면 나 자신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그가 보는 세계를 공감하기 위해서 내 마음을 비웁니다. 나오미 페일은 환자와 얘기를 나누기 전에 1~2분간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비우는 것을 센터링(Centering)이라고 하며 인정치료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합니다. 대화 도중에도 센터링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치매환자는 생각을 보는 대신 마음을 느낍니다. 나의 표면보다 나의 진심에 자신의 문을 열어 줍니다. 환자를 미리 판단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들을 준비를 합니다. 생각이 있듯 없듯 환자와 대화를 하면서 우리도 성장합니다.

    4.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 중증 치매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

    10년 전 치매가 발병한 60대 초반 여성으로 말을 완전히 잃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지내며 집중해서 텔레비전 시청을 하고 계신다. 다가가면 긴장하고 경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입술을 오므리고 손에 힘을 주어 옷자락을 말아 쥔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 옷자락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슬로 모션으로 내 손을 천천히 잡으며 오므렸던 입술이 펴진다.

    환자의 장점을 찾아주십시오. 칭찬해 주십시오. 형식적인 칭찬은 하지 마십시오. 치매 환자는 빈말을 잘 알아차립니다. 환자와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추고 그의 눈빛을 따라합니다. 말을 못해도 눈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가벼운 악수를 하고 손등이나 어깨를 토닥여 줍니다. 오늘도 당신은 아름다워졌다고 당신을 만나서 참으로 기쁘다고 말해 줍니다.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면 함께 따라 불러봅니다. 같이 즐거워합니다.

    5. 모든 강은 바다에서 만난다- 건망증이 심해지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거나 오해하는 상태

    보행기를 사용하는 90대 어르신으로 간병사가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보다 자신을 소홀히 하고 오히려 자기를 모함한다고 억울함을 하소연하신다. 처음에는 한참 얘기를 들어드렸고 이후에도 한 얘기를 하고 또 하시지만 시간이 많이 줄었다.

    치매 환자의 얘기를 들어 주는 데 보통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얘기에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껏 누구도 제대로 그의 얘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얘기가 아니라 진정으로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환자는 대부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얘기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보다는 존재가 중요해집니다. 시간도 줄고 환자를 보는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인정치료는 의사, 간병사, 복지사, 가족 등 누구나 잘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안정되고 돌봐주는 사람도 편해집니다. 꾸준한 노력은 쉽지 않습니다. 내 건강을 최선으로 유지하고, 항상 명상하고 기도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큰 바다에 다다랐음을 알게 됩니다.

    도움말= 창원 희연재활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최경만 진료과장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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