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에게 1- 이상옥(시인)슬픔에게 1곁을 떠난 적도 있는 줄 알았는데몸을 바꾸고 얼굴을 바꿨을 뿐너는 섬을 감싸고 도는 파도처럼 낯을 때렸고나는 늘 젖었었다그래도폐허처럼 평화롭다-시집 2007. 한국문학도서관☞ 슬픔은 생의 양식이다.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듯이 우리 생의 곳곳에 묻혀있는 시간들의 많은 부분들은 슬픔과 연결되어 있...2013-04-18 01:00:00
- 의자 위의 흰눈- 유홍준(시인)간밤에마당에 내놓은 의자 위에 흰 눈이 소복이 내렸다가장 멀고 먼 우주에서 내려와 피곤한 눈 같았다, 쉬었다 가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지친 눈 같았다창문에 매달려 한나절,성에 지우고 나는 의자 위에 흰 눈이 쉬었다 가는 것 바라보았다아직도 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아직도 더 가야 한다고햇살이 퍼지자멀고 먼...2013-04-11 01:00:00
- 어머니의 악기- 박현수(시인)어머니의 악기 늙으면 악기가 되지어머니는 타악기가 되어움직일 때마다 캐스터네츠 소리를 내지아버지가 한때 함부로 두드렸지잠시 쉴 때마다자식들이 신나게 두드렸지황토 흙바람 속에서도 두드렸지석탄먼지 속에서도쿨럭, 거리며 두드렸지뼈마디마다두드득, 캐스터네츠는 낡아갔지이제 스스로 연주하는 악기가 되어안...2013-04-04 01:00:00
- 구름- 설태수(시인)구름이 흘러가는 그 시간에트럭이 달리고 오토바이가 질주하다.뱀이 가고 제비는 허공을 솟구친다.지상에 존재하고하늘을 나는 것들은구름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한다.한나절 동안 보이지 않아도 그렇다.구름을 통과한 비행기가 다시 내려오고해와 달이 구름에 가려질 때가 있다.구름을 떠나서 살 수 있는 것은 없다.비 ...2013-03-28 01:00:00
- 터- 채 선(시인)길 건너 신축공사장 굴착기 소리뿌리처럼 뻗어와 20층 공중을 흔들어댄다.바닥을 끌어내려더 깊은 허공 만드는 소음과 분진유목(遊牧)의 경로를 털어내듯 지하가 깨어나고 있다.팰수록 명징해지는 구렁위가 벼랑이고아래도 벼랑인 세상을 딛고 서서어쩌자고, 어쩌자고 나는 허공에 빨래를 널고 있는가.- 2013. 봄호☞ 요...2013-03-21 01:00:00
- 냄비우동- 정일근(시인)냄비우동 -희섭에게 - 정일근 시인진주 시외버스 터미널 앞 밤부터 새벽까지만 문 여는냄비우동 가게 있다스무 해와 서른 해 사이쯤의 나이로 앉은 늙은 양은 냄비에서 우동이 끓는다 막차를 타고 떠날 사람들과 막차를 타고 돌아온 사람들이 냄비우동을 기다리며 말없이 앉아있다 시인 박희섭 내게 그 냄비우동 한 그...2013-03-14 01:00:00
- 아름다운 도둑- 신덕룡(시인)아름다운 도둑냇가에 앉아물끄러미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소리 없이 다녀갔다.소금쟁이는 뼛속을 비워 날아오르는 새보다 더 가벼운발을 가졌다.흘러가는 발자국들나 모르게 숨어 있다가 밤이 깊어서야 나타나는텅 빈 꿈속에서 반짝이는물비늘처럼글썽임처럼너는, 아름다운 도둑이었으면 좋겠다.언제든 내게로 와서...2013-03-07 01:00:00
- 목련꽃, 저 여자, 지다- 손현숙(시인)목련꽃, 저 여자, 지다치마 훌렁 뒤집어쓰다늙은 여자, 땅 위로 몸 부린다꽃잎에 차가운 숨을 불어비명처럼 허공을 난다불덩어리 맨발로 바닥을 친다흰 피, 뜨겁게 물들인다물들어서 꽃으로 저를 버린다아무나 저릿, 밟고 가시라!시집 <손> 문학세계사 2011☞ 올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 추위도 절기는 막을 수 ...2013-02-21 01:00:00
- 입술도둑- 배한봉(시인)산비탈 배밭에 배꽃 한창이다.어쩌다 저녁때를 놓친공복의 노을이 가장 먼저 젖어드는 저 배밭.그새 입술 빨갛다.슬쩍, 배꽃 입술 훔치고 저도새빨개져 산등성이 넘어가는 도둑구름.나는 또 막차를 놓친,망연자실, 할 말 잃은 여행객이다. 2012년 10월호☞ 설날도 지나갔고, 매화가 꽃망울 틔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노...2013-02-14 01:00:00
- 새벽 산을 오르다가- 김수복(시인)산짐승이 밤새 먹다 버린 새벽달을 보았다아직 식지 않은 눈빛을 보았다선혈이 낭자한, 부릅뜬 눈을 뜨고 있는 눈동자를 보았다- 시집 <외박> 창비. 2012☞ 이 시는 ‘새벽달’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이 밀도 있게 진행됩니다. 시에서 첫 구절, 한 줄을 쓰는 작업이야말로 시인의 영감일 것입니다.‘새벽달’을 ‘산짐승...2013-02-07 01:00:00
- 꿈 속에 피는 꽃-양봉일지 12- 이종만(시인)벌 치는 사람은 한겨울에도아카시아 꽃 만발하는 꿈을 꾼다꿈 속에 아카시아 꽃 지천이었는데비바람 몰아쳐 죄다 떨어지는 꿈 꾸고 나면한겨울에도 식은땀이 흐른다함박눈 내리면 지는 꽃잎 같아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있다시집 2006. 문학세계사☞ 올겨울엔, 산과 들판에 인간의 길도 이따금 지워질 만큼 함박눈이...2013-01-31 01:00:00
- 자화상- 박노정(시인)최고만이 미덕인 세상에서떠돌이 백수 건달로세상은 견뎌 볼 만하다고그럭저럭 살아 볼 만하다고성공만이 미덕인 세상에서끝도 시작도 없이가랑잎처럼 정처없이다만 가물거리는 것들과 함께- 시집 , 해들누리, 2002☞ 세상을 살다 보면 존재에 대한 성찰이 사무칠 때가 있습니다. 시인은 문득 자신을 뒤돌아봅니다. 거울...2013-01-24 01:00:00
- 손금과 손등- 박서영(시인)다방 옆자리 노인이 아가씨 손금을 봐 준다중년의 아가씨부끄럽게 두 손을 가지런히 탁자 위에 올리는데손등에 파란 혈관이 굵직굵직하다툭 튀어나온 혈관이 아버지에게 밥을 배달한다엄마를 위해 두 손을 모은 혈관은 늘 터질듯 긴장상태다오빠를 위해 돈을 번 혈관은 이제 콧노래를 부른다가난한 가족을 가졌다는 것...2013-01-17 01:00:00
- 덕산- 강영환 시인분 마른 곶감에 우러나는 산 맛이나빚어놓은 질그릇에 도는 산 빛은멀리 가는 덕천강 출렁거림 때문이다사람이 길을 만들고길은 홀로 산으로 간다낮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 일처럼이마 밝은 천왕봉이 가슴에 있어산을 닮은 얼굴이 산을 품고 산다길은 산으로 나있고강은 산에서 나온다-시집 ‘불일폭포 가는 길’ (책펴냄...2013-01-10 01:00:00
- 달아 마을- 강희근(시인)날은 어둑발비 내리고좁은 내안으로 바다가 들어와 저물고 있다앞길에는 가로등 몇 개 달려 있지만고개로 넘어서기까지도심에서 따라오던 불빛은 힘에 부쳐오던 길 되돌아 갔다격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마을 등에 업은 채길머리 지키고 서 있는 통영해물천국식당 이름이 천국이다키 작은 민박집들이 천국을 바라,천국이...2013-01-03 0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