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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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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21) 이창수 지리산학교 교장

“지리산이 교실이고, 지리산의 삶이 다 수업 과목이지요”

  • 기사입력 : 2009-11-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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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수 지리산학교 교장이 화단에 물을 주고 있다.



    현실이 강요하는 경쟁의 굴레는 비켜 살되, 자기 자신에겐 물러서지 않는 옹골찬 삶이 오롯이 담긴 학교.

    거친 손에 덥수룩한 수염, 꽉 다문 입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을 초입에 ‘지리산학교’라고 덩그러니 붙어 있는 문패, 반쯤 열려 있는 대문, 교사(校舍)는 없고 촌집 두 채에 달아낸 건물 하나가 유일한 배움터라는 점은 판에 박힌 선입관을 깨면서 ‘지리산’과 ‘학교’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뭔가를 채우려고 지리산을 찾는 도시인들에게 묵시적으로 ‘비울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고 이창수(50) 교장의 허허로운 웃음은 학교 이름조차 잠시 빌려 쓰고 있는 현실을 이방인에게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지리산학교 가는 길

    지리산학교 이창수 교장을 찾아 나선 지난 19일 오후. 예년같지 않은 찬바람이 10월의 오후를 싸늘하게 느끼게 했다. 그러나 안채 마루를 비추는 늦가을 오후의 햇살은 주인을 닮아선지 눈부시게 빛났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의 골목 한쪽 끝자락. ‘지리산학교’라는 명패가 반갑게 맞는다.

    며칠 전 전화로 인터뷰 여부를 물었을 때 가르쳐준 카페에서 찾아낸 자료로 지리산학교, 이 교장에 대한 인식을 정리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진기자를 하다가 변덕스러운 마음이 동하여 1999년 말 지리산 악양땅으로 내려감.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인 악양골에서 녹차를 비롯하여 열매가 달리는 나무를 이것저것 가꾸며 살고 있음. 일주일에 하루는 순천대학교 사진예술학과에 가서 젊은이들이랑 놀기도 함.”

    이어 “‘중정다원’은 우리 집 이름이고, ‘금생춘(今生春)’은 내가 만든 발효차 이름. ‘산돌’ ‘강산’ ‘다산’은 내가 기르는 개 이름. ‘악양댁’은 집사람 별명이고 ‘개창수’는 나의 별명.”

    유독 개창수라는 별명이 눈을 잡았다.

    ▲건물 한 채 없는 학교

    눈대중으로 100평도 채 안되는 터에 기와집, 슬레이트집, 새로 달아낸 집이 꽉 차 있다. 마당에는 고추, 국화, 허브, 백합, 백일홍, 앵두나무, 매실, 감나무에 이름 모를 우리 꽃과 풀들이 향기로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이 교장이 반갑게 맞는다. 한편에서 아내 안경임(52)씨가 꽃을 손질하고 있다.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됐느냐”고 묻자 “평소 ‘농사를 지어야 한다, 강원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고 그 시기는 내 나이 40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취재차 하동에 자주 왔고 1999년 말께 화개면 용강마을에서 월세를 얻어 지내다 보니 여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10년 주기로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동에 온 지 이제 10년이다. 처음 5년은 주민과 섞여 함께 살면서 농사를 배웠고 5년은 스스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녹차, 매실, 감(대봉)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주민과 함께 사는 법

    그는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차, 매실, 감을 심고 키우며 자라는 것은 농사를 배우며 주민이 되는 과정이었다”면서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에 따르듯 사람과 지리산, 악양을 배우고 익혔으며 풀 하나, 곡식, 바람 소리, 물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애정을 갖도록 노력했으며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주민과 관계에 대해 “굴러온 돌은 박힌 돌 옆에 조용히 박히자는 것이 소신”이라면서 “오늘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악양 사람이라면 수확기 대봉감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이 보통 생각인데 감 농사를 짓지 않으면 이런 정서를 알 수 없고 혹 말을 건네더라도 속에 있는 말은 안 나온다”고 말했다.

    이 교장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글이 그의 책 ‘내가 못 본 지리산’에 실려 있다.

    ‘해거름 들길에서 동네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어디 다녀 오세요? 어~어 논에. 다 저녁에 무슨 논이에요. 어~어 그냥. 대개 길에서 만나는 어르신과의 대화는 기름기 없는 담백한 말이 이어집니다. 지난밤 내린 비가 논에 가득합니다. 이른 아침 비 그치기가 무섭게 아랫마을 아저씨는 논에 들어갔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어~어 그냥입니다. 내가 농사 짓는다고 떠들고 다녀도 실패할 농사꾼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어 그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도회지 출신이라 잡생각 많고 이유도 많아 그들의 무심한 마음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 교장이 생각하는 학교

    이 교장은 “하동에 온 지 10년이 된 올해 5월에 지리산학교를 시작, 석 달을 기준으로 5~7월 학기를 운영하고 8월은 휴가철이니 쉬고 9월부터 11월까지 운영 중”이라며 “오는 12월에 쉰 뒤 내년 1월부터 3월까지 하는 방식으로 1년에 석 달 쉬고 3개 과정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교과에 대해 그는 “그림(기초실기, 사생화, 서양화), 기타, 도자기, 목공예, 사진, 시문학, 숲길 걷기, 칠공예(옻), 천연염색, 퀼트(바느질반) 등 지역 주민이나 도시인들이 원하는 것은 다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르치는 사람에 대해 물었다. 곁에 있는 부인을 가리키면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여기 내려와 퀼트를 가르치고 있고 나는 사진을 지도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이름(시인 박남준, 산악인 남난희, 도예가 안상흡 등)을 묻자 “가르치는 분의 자격이나 학생의 자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절실하게 배우고 가르치며 함께 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인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마당에 있는 꽃을 꺾기 시작했다. 이 교장이 “화분에 꽂으려고?” 묻자 “생각해 보고”라고 대꾸한 뒤 “마당에 있는 각종 꽃과 나무, 풀이 교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염색이나 퀼트 등 모든 것이 이렇다”고 말한다.

    이 교장이 “살아 움직이는 이 공간이 학교이며 배움터”라고 거든다.

    ▲직함도 빌려 쓰는 것

    이 교장은 “교장은 재미없고 의미도 없다. 교장으로서 하는 일이 좋다”고 말해 직책이 갖는 언어적 의미보다는 가르치며 교과 방향을 정하는 등 그만의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역할에 의미를 뒀다.

    이 교장은 “교장이라는 직함도 내 삶처럼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며 “학교가 자리를 잡고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서면 아무 생각없이 물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나누되, 결코 현실이 강요하는 기준을 따라가지 않고 적당히 비켜선 삶. 그것이 교장이라는 직함까지 자신이 만든 배움의 터에서조차 비켜서 있도록 한 것이다.

    어쩌면 교장이라는 직함보다 자연인 이창수로 카메라를 통해 지리산과 악양골이 숨쉬고 말하는 것을 더욱 치열하게 담아 세상과 공유하면서 자신을 닦는 일을 가장 자기다운 것으로 정리했을지 모른다.

    ☞이창수 교장은=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샘이 깊은 물’, ‘국민일보’ ‘월간중앙’ 사진기자로 16년간 일했다. 2000년 이후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우러진 하동군 악양골 노전마을에서 살면서 ‘중정다원’에서 녹차, 매실, 감농사를 지으면서 지리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글=이병문기자 bmw@knnews.co.kr

    사진=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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