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6일 (월)
전체메뉴

[투고] 특별한 갤러리에서- 이종화(전 진해기적의도서관 관장)

  • 기사입력 : 2009-09-16 00:00:00
  •   
  • 전북 남원 수지면에 가면 300여 년 된 죽산 박씨 고택인 몽심재(夢心齋)가 유명하다. 지나가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한 것으로 회자되는 이 몽심재에는 요요정(樂樂亭)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정자가 하나 있다. 문간 행랑채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즐거움으로 가득한 정자’라는 뜻으로 하인들을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한다. 양반인 주인만 정자에서 쉴 것이 아니라 힘없는 아랫사람들도 정자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실업률의 증가와 예측할 수 없는 경제 불황으로 몹시 불안정하다. 더 암울한 것은 공권력에 의한 피해의식이 팽배하여 불신과 반목으로 모든 관계가 피폐해져 가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대통령을 비롯하여 서민을 위한 작은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얼마 전, 진해경찰서에서도 로비와 복도를 활용하여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아담한 ‘라운지 갤러리’를 열었다. 그곳을 찾는 민원인들에게 권위적인 위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얼마만큼의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방문객을 배려한 정신이 엿보인다. 예술이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므로 누구든 그 많은 그림 중 한 곳에서 깊은 위로와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면 큰 수확이리라.

    그림에는 문외한인데도 30호 정도의 ‘바닷가에서’라는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그 그림 속에는 두세 척의 낡은 어선이 매여 있을 뿐 한여름의 뜨거운 에너지도 색색의 비치 파라솔도 해수욕복 차림의 피서객도 없다. 그저 황혼인지 미명인지 알 수 없는 몽롱한 빛깔로 가만히 정지된 해안이다. 적막한 고요만이 가득하다. 문득 마음속 깊이 묻어둔 한 문장이 떠오른다. ‘육지에서 바라볼 때 바다는 풍경이지만 바다 가운데로 나갔을 때의 그것은 사상이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바다는 사상이다’는 말은 잊혀지지 않았다. 크루즈함을 탈 기회가 있었지만 바다 복판에서 사상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지중해에서도 태평양에서도. 바다에서 바라보는 해안은 사상이 싹트기에는 너무 강렬하고 풍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 속의 적요한 바닷가는 이승에 살면서 저승사람과 교감하고 대화했던 원시의 샤머니즘에도 공감하게 한다. 심리학자는 죽음이 무서워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옳은 해석은 아닐 것이다. 아무런 공포 없이 수시로 죽음을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죽음이란 인류 중에서 가장 고귀했던 사람이 앞서 밟은 길을 쫓아가는 것이다. 농익은 열매는 떨어지면서도 자기를 탄생시킨 대지를 찬미하고 자기를 키워낸 나무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렇게 최후를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개인에게 항상 제일 좋은 것을 주신다. 죽음 또한 하나님이 그것을 보내는 그 시기에 있어서 최상의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상을 굳힌 것은 실제 해변에서보다 더 진한 ‘바닷가’를 느끼게 하는 신비한 힘이 화폭에 가득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낯선 공간에서 뜻하지 않게 가을맞이 큰 선물을 받은 듯하다. 기꺼우면서도 바라는 게 있다. 경찰서란 민원인들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찾는 곳이다. 그들의 상한 마음을 배려한 갤러리가 전시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 없고 백 없는 서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든든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이종화(전 진해기적의도서관 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