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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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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8) 작곡가 김영국씨

악보에 파격·신선 그려넣어 나만의 선율 만들죠

  • 기사입력 : 2009-06-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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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곡가 김영국씨가 피아노를 이용해 작곡을 하고 있다. 


    김영국씨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다.

    “저만의 스타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곡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참가한 8차례 국제콩쿠르 중 5차례 발군의 성적을 낸 선진 작곡가 김영국씨는 남이 하지 않는 악기 편성과 기법으로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곡을 만들고 있다.

    ▲막노동 경험은 인생의 모토

    그의 국제콩쿠르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2003년 제4회 프로코피에프 국제 작곡 콩쿠르 입상(러시아)·제26회 이탈리아 로마 발렌티노루치 국제작곡콩쿠르 특별상, 2004년 제9회 도쿄 국제 실내악 작곡콩쿠르 결선 진출·제14회 젊은 음악가 국제 작곡콩쿠르 2위, 2005년 제17회 조지 에네스쿠 국제작곡콩쿠르(루마니아) 1위.

    이 중 프로코피에프 국제 작곡콩쿠르, 이탈리아 로마 발렌티노루치 국제 작곡콩쿠르(수상 당시 가입), 조지 에네스쿠 국제 작곡콩쿠르는 스위스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연맹(MWFIMC)에 가입된 권위 있는 콩쿠르다. 국내 작곡가가 3개 MWFIMC 가입 콩쿠르에서 입상한 사례는 흔치 않다.

    그는 사천시 곤양면 가화리 출신 촌놈이다. 음악을 좋아했던 부모님의 권유로 초등학생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피아노를 사줬고 피아노 학원에도 다니게 했다.

    하지만 연주가로서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손가락을 다쳐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됐다. 첼로 등 여러 악기를 섭렵하다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나간 작곡대회에서 상을 탔다.

    “이때부터 작곡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작곡이란 영역을 접한 것은 그 이전부터라고 생각해요. 왕복 10리 산길을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무덤이 많은 음침한 산길을 걷을 때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이기기 위해 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렸죠. 콧노래를 부르다 이상하면 처음부터 다시 불러 보고 한 것이 작곡을 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1990년 경남예술고등학교 1회로 입학한 뒤 실기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구 계명대에 입학했으나 1학기만 다니다 그만뒀다. 음악 공부를 하러 독일에 간 지 몇 달 후 영장이 나와 입대했다.

    제대 후 유학 항공권을 사기 위해 두 달간 울산 현대조선소의 하청업체에서 막노동을 했다. 이때 인생을 살아가는 데 모토가 될 만한 일을 경험한다.

    “한번은 철근 절단 숙련공이 모는 오토바이의 뒤에 타고 다른 현장으로 가는데 아저씨 목에 건 수건에서 여태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삶에 찌든 냄새가 났어요. 그 냄새가 향수보다 더 짙은 사람의 향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나도 이런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죠. 지금도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몸에서 향수 냄새가 아닌 땀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자주 해요.”

    ▲IMF와 오스트리아 유학

    하고자 하는 의욕만으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으나 막막했다. 군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졌고 언어 준비도 안돼 대학에 입학하는 데 오래 걸렸다.

    1997년 10월 오스트리아의 3대 국립음대 중 한 곳인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작곡과에 입학한 지 2개월 후에 IMF 사태가 터졌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유학비를 부쳐 줬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공과금 낼 돈이 없어 전기, 가스가 끊기고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할 정도로 빈궁했다.

    그나마 당시에는 입학하면 학비가 없고 한 달에 학생회비 3만원가량만 내면 다닐 수 있어 학업은 겨우 지속할 수 있었다.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학제는 대학 2년, 대학원 4년 과정이었는데 휴학을 몇 차례 하다 보니 대학 졸업에만 4년이 걸렸다.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너무 힘들게 공부하다 보니 음악적으로 배웠다기보다는 삶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 많았죠. 그 시간들이 후에 작품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2003년 첼로 솔로곡 ‘콘트라스트’로 프로코피에프 국제 작곡콩쿠르에서 입상해 상금을 받게 됐다. 이때부터는 생활에 여유가 생겨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발렌티노루치 국제 작곡콩쿠르, 이탈리아 젊은 음악가 국제 작곡콩쿠르 등에서 잇따라 입상한 뒤 2005년 조지 에네스쿠 국제 작곡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오스트리아 위벨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작품 발표회도 여러 차례 가졌다. 모차르테움 주최 작곡 발표회, 성 페테르부르크 클라즈노프 콘서트홀서 러시아 문화부 초청 연주, 칼오르프 콘서트홀서 작곡 발표회, 조지에네스쿠 페스티벌 초청 연주를 가졌다.

    김영국이 지금까지 작곡한 작품 중 완성작은 20개, 미완성작은 5개 곡이다. 작곡하다가 안 된다 싶으면 오선지를 찢어 버려 휴지통에 들어간 작품도 많다.

    ▲새로운 작곡 방식

    그의 작곡 기법과 악기 편성은 기존 작곡가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클래식에서 현악3중주라고 하면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로 정해져 있는데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악기 편성을 한 적이 없어요. 3중주를 해도 새롭게 악기를 편성하니까 실패도 많이 하고 박수를 받기도 했죠.”

    조지 에네스쿠 콩쿠르 1위 수상작인 ‘서라운드(surround) 7’의 첫 모델은 2002년 작곡됐고, 한 번의 연주를 통해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쳐 2004년 완성됐다.

    기존의 악기 편성과는 달리 7대의 클라리넷으로만 구성되는데, 각각 Eb 2대, Bb 3대, 베이스 2대로 연주되는 파격적이고도 신선한 악기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라운드 7’의 특징은 가정의 홈시어터나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입체 음향의 특수 효과를 스피커를 통하지 않고도 연주홀 내에서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무대의 악기 배치와 달리, 무대에는 3명의 주자만 서고, 나머지 주자는 객석을 에워싸며 원으로 서서 연주한다.

    언제 어디서 소리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객석에서는 항상 긴장한 상태로 음악을 듣게 되고, 음악 또한 계속 돌고 돌아 음향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킨 곡이다.

    이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A-B-C), A부분은 과거를 나타내는 멜로디 중심적인 부분이다. 전후(戰後)시대를 살았던 세대를 표현하고 있기에 단조로운 멜로디와 서글픈 화음 진행이 주를 이루고, 곡이 진행될수록 템포가 점점 빨라지면서 B부분에 도달하게 된다.

    B부분은 무대 정중앙에 위치한 클라리넷 주자의 솔로 연주로 이뤄지며, 현재 우리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과거의 회상과 함께(A)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암시(C)하는 교량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C부분은 A와 B의 합성으로 작곡가가 개발한 고난도의 클라리넷 주법으로 미래의 복잡하고 암울한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타, 플루트, 비올라로 편성한 ‘기타 3중주’는 한국에 대형 태풍이 닥쳐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을 생각하면서 쓴 곡이다. 태풍 소리를 흉내내고 소음을 삽입하려 하다 보니 현재 존재하는 악기로는 도저히 안돼 기타를 치는 친구와 함께 반년 동안 연구해 새로운 기타 기법을 만들어냈다.

    ‘시간의 상자’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같이 공부했던 후배인 클라리네티스트 김민아가 곡을 써 달라고 해 2004년 완성한 뒤 2007년 김민아의 서울 예술의전당 독주회 때 연주된 곡이다. 클라리넷 솔로 작품인데 피아노 음향도 포함돼 있다. 피아노 페달을 계속 밟아 건반이 떠 있는 상태에서 클라리넷을 불어 진동에 의해 발생하는 독특한 소리를 삽입했다.

    ▲지역에서 활동

    그는 2006년 모차르테움 대학원 과정을 졸업, 마기스터(Magister)를 취득한 뒤 귀국했다.

    귀국한 뒤 KTX를 타고 다니며 서울에 있는 서경대에서 3학기 동안 강의했지만 출퇴근시간에 공부를 더하고 학생들을 더 가르칠 수 있는데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싶어 그만뒀다. 지금은 경남예고와 경상대에 출강하고 있다. 작곡은 강의가 없는 일요일과 월요일에 주로 하고 있다.

    내년에는 새로운 작품을 써서 그동안 미뤄왔던 국내 작품 발표회를 가질 계획이다.

    다른 작곡가의 창작 방식을 따르지 않으려는 그의 고집이 빛을 발할 날을 기대해 본다.

    그는 지방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유망한 신인작곡가 중의 한 명이고 아직 젊어 가능성이 무한하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글=양영석기자 yys@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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