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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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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이리 2

  • 기사입력 : 2008-11-25 00:00:00
  •   


  • - 이건청

    탱자나무가 새들을 길들이듯

    저녁부터 새벽까지 어둠이 되듯

    침묵하겠다.

    풀들이 장수하늘소를 숨긴 채 풀씨를 기르듯

    봄부터 가을까지 침묵하겠다.

    이빨도 발톱도 어둠에 섞여 깜장이 되겠다.

    나는 짖지 않겠다.

    말뚝 가까운 자리에 엎드려

    바람 소릴 듣겠다.

    떨어진 가랑잎들을 몰고 가는 바람 소릴 듣겠다.

    불꺼진 골목처럼 어둠이 되겠다.

    나는 짖지 않겠다.

    밤새도록 깨어 있겠다.

    ☞ 죽림칠현은 난세의 어지러운 때를 피해 은자가 되었다. 이 시도 역시 세상과의 불화, 선비의 정신을 수용 없는 시대에 쭉정이와 한데 섞이지 않으려면 까만 침묵으로 물러나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화자는 소란한 세상의 불의나 권력이 스스로를 희망이니 빛이니 포장할 때, 그 껍데기의 시간을 피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이빨도 발톱도 깜장이 되겠다’든가 ‘짖지 않겠다’는 시어들로 반감 어린 심상으로 표현한다.

    ‘탱자나무가 새들을 길들이듯’ 혹은 비록 가진 힘은 없지만 ‘풀들이 장수하늘소를 숨긴 채’ 미래를 간직하듯….

    그러나 세상을 등지지 못하는 따뜻한 연민은 ‘말뚝 가까운 자리’에서나마 세월을 지켜보려는 의지를 ‘밤새도록 깨어 있겠다’는 다짐으로 시를 맺는다.

    혼란한 시대와 지식인의 방황이 깊게 다가오는 시다. - 문희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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