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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맹구치부목(盲龜値浮木)- - 눈 먼 거북이가 물에 떠 있는 나무를 만나다

  • 기사입력 : 2008-07-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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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때 어울리던 친구나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 가운데서 헤어진 뒤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났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만이 아니라 아끼던 물건이었는데, 없어졌거나 잃어버린 뒤에 그 물건을 얻을 수가 있다면 하고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필자의 숙부님은 책 읽기를 아주 좋아하였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한의학(韓醫學 : 1980년대까지는 漢醫學으로 표기하였음) 서적도 가끔 보았다. 가끔 자기 약이나 가족들의 약을 지어 주기도 했는데, 특효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숙부님의 한의학 관계 책 가운데서 ‘화타신의비전(華陀神醫秘傳)’이라는 책이 있었다. 화타는 후한(後漢) 말기의 아주 뛰어난 의원으로, 조조(曹操)가 중풍이 들었을 때 머리에 문제가 있다 하여 머리를 열어 수술을 하려다가 조조에게 처형되었다. 그는 자기가 지은 의학 책을 불살라버렸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집에 원본이 남아 있었고, 불살라졌던 것은 사본이라고 되어 있다. 이 책이 집에 남아 있던 화타의 진본인지, 후세 사람의 가탁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 숙부님은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중요한 물건만 챙겨 가고, 나머지 살림도구는 우리 집에 맡겨두었다. 그 가운데 ‘화타신의비전’이 남아 있었다. 필자가 그 책을 가끔 보기도 하였는데, 이 책은 증상별로 처방이 나와 있어서 의학에 정통하지 않아도 처방 그대로 약을 쓰면 되니까 쉽게 활용을 할 수가 있었다.

    필자가 그때 그냥 ‘마른 트림’이 자주 나오는 증상이 있었는데, 아프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남 보기에 안 좋아 고쳤으면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책을 찾아보니까 “산에 가서 칡을 캐서 즙을 내어 석 되를 먹으면 낫는다”라고 처방이 나와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칡을 반 가마 정도 캐어 와서 돌확에 찧어서 마셨더니 말끔히 나았다.

    한약재로 처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민간약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곡식 껍질 등이 목에 걸리면 닭의 침을 먹고, 고기 뼈가 목에 걸렸으면 개의 침을 먹으라” 등등이었다.

    그 뒤 군대 갔다가 휴가 오면서 숙부님 댁에 들렀는데, “그 책이 보이지 않는데 고향에 있으면 다음에 올 때 찾아오라”는 분부를 듣고 찾아드렸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숙부님도 돌아가셨고 종제들에게 그 책을 찾아서 나를 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 책이 갖고 싶지만 종제들의 처지에서 자기 부친의 유품이기에 쉽게 내놓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의학 관계 출판사나 도서관에 알아봐도 그 책은 없었다. 1989년 이후로 중국을 자주 다니면서 서점을 두루 뒤졌지만 그 책은 없었다. 혼자 마음 속으로 ‘시간이 나면 종제에게 이야기해서 복사라도 해서 가져야겠다. 그동안 없어졌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한국에서 문화예술관계 인사 5명이 북경에 와서 같이 반가원(潘家園)이라는 북경 동쪽에 있는 유명한 골동시장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헌 책을 파는 서점도 있는데 나는 한길사 김언호 사장하고 헌책방을 둘러봤다. 그런데 그 책이 거기에 있었다. 단숨에 샀다. 우리 돈 3000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불교의 ‘백유경(百喩經)’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을 비유하여 “눈먼 거북이가 바다를 헤엄치다가 떠다니는 나무를 만나는 격”이라고 했다. 정말 몇 십년 만에 우리나라나 중국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던 책을 여기서 만났으니 정말 이루기 어려운 소원을 달성하였다.

    *盲 : 눈멀 맹. *龜 : 거북 구. *値 : 만날 치.

    *浮 : 뜰 부. *木 : 나무 목

    허권수(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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