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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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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절기망상(絶忌妄想)

  • 기사입력 : 2008-05-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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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기망상(絶忌妄想)-망령된 생각을 절실하게 꺼린다

    중국 의학사상 의학과 약학의 기술을 집대성하여 본초강목(本草綱目)이라는 불후의 저서를 남긴 이시진이라는 의학자가 있었다. 그는 명(明)나라 후기의 인물인데, 혼자서 40년의 시간을 투자하여 직접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약초의 성질을 알아내고, 처방을 알아냈다. 그가 새로 발견해낸 약초만도 374종에 이르고, 1만1000종의 처방을 모았다. 의학서로서 본초강목은 오늘날까지도 의약학 방면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도 의학에 정통한 학자인 이시진이 제일 싫어하는 행위가 신선술(神仙術), 장생불사(長生不死), 기공(氣功) 등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이상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과학적인 사고를 한 이시진이 미신을 싫어한 것이었다. 의학에 정통할수록 장생불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

    도사들이 수은을 이용하여 단약(丹藥)을 만들어 그것을 먹으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망상(妄想)은 수천여 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이시진 당시에는 만력(萬曆) 황제까지도 장생불사를 위한 단약 만드는 일에 빠져 있었다. 황제가 그러니 온 나라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시진은 수은을 먹으면 중독된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기공을 하면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쓰는 등 신비한 능력이 생긴다는 각종 주장도 일축하였다.

    위대한 의학자였지만, 그가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순리적인 평범한 것이었다. 각종 약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그 약을 활용하여 병이 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이미 병이 났을 때는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만주족이라 하여 중국 사람들이 평가절하하지만, 역사상 가장 영명한 임금 중의 한 사람인 청(淸)나라 강희황제는 고금, 동서의 학문에 정통하였다. 중국의 학문은 물론, 서양의 천문학, 수학, 물리학 등에 정통하였고, 서양의 외국어도 알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바는 상식에 바탕한 평범한 것이었다.

    강희황제가 나이가 많아져 수염이 허옇게 새었다. 그러자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주위의 신하들이 수염을 검어지게 한다는 오수(烏鬚)라는 약을 먹을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강희황제는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수염이 허옇게 되는 것이 자연적인 이치다. 내가 수염이 허옇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중국 역사상 300여명의 황제가 있었지만 수염이 허옇도록 황제 노릇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더냐?”하면서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수염이 허옇게 된 사실을 받아들였다. 또 주변의 신하 가운데 이가 빠져나간 사람이 있었는데, 계속 한 숨을 쉬면서 아쉬워하였다.

    강희황제가 그의 그런 행동을 보고,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이가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순리대로 생각해야지,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 안타까워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타일렀다.

    사람은 누구나 아프지 않고 오래 살고자 한다. 그래서 건강에 관계된 일로 유혹하면 대부분 넘어가게 되어 있다. 요즈음 건강에 관한 각종 약과 방법이 개발되어 홍보기법을 동원하여 다투어 판매하고 있다. 사람들이 혹시나 하고 그 효과를 기대하다 보니 많이 사서 이용하거나 약을 먹는다.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검증 안된 약이나 사이비 치료법 등 때문에 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음식 절제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여, 병이 나기 전에 예방하고, 병이 났으면 적극적으로 고치는 방법을 써야지, 맛있다고 하여 음식을 지나치게 먹고, 행동은 방종하게 하고, 운동은 안 하다가, 병이 나면 검증 안 된 처방이나 약품을 써서 병을 치료하려고 하면 쉽게 낫겠는가?

    *絶 : 간절할 절. *忌 : 꺼릴 기. * 妄 : 망령될 망. * 想 : 생각할 상.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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