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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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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229> 처사횡의(處士橫議)

  • 기사입력 : 2008-04-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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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벼슬 없는 선비들이 멋대로 논의한다

    옛날에는 글을 아는 사람의 숫자가 적어 글을 아는 것만 가지고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였다.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 교사가 부임하면 온 동네 젊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저녁마다 그의 자취방을 방문했고, 그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또 그와 무슨 일을 상의했다. 그야말로 온 마을의 선생이요 지도자였다.

    그러나 교육이 널리 보급되어 모든 국민들의 지식 수준이 높아지자 너나없이 박학(博學)한 사람이 되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게 되었다. 말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반풍수 같은 지식으로 책도 내고 연구소도 차리는 사람까지 생겼다.

    정확하게 알고 지식을 퍼뜨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잘못된 지식을 퍼뜨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데도 함부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퍼뜨리고 있다. 또 좋은 것은 100% 좋은 것이 아니고 대부분 부작용도 따른다. 예를 들면 요즈음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는 홍화(紅花)씨는 뼈를 붙게 하는 데는 특별한 효과가 있지만, 많이 먹으면 위장이나 대장을 상하게 한다. 차(茶) 같은 것도 좋은 점이 분명 있지만, 빈 속에 많이 마시면 내장을 상하게 만든다.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선전하면 곤란하다.

    어떤 일간지 신문기자인데, 자기 주장이 너무나 강하여 정말 말릴 수 없었다. 소쩍새에 관해서 글을 썼는데, 그 사람 주장에 의하면 역사상의 모든 문헌도 다 틀렸고, 새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조류학자도 다 틀렸고, 자기의 주장만 맞다고 했다. 자기가 맞다는 것은 누가 판정을 해주었는지 모르겠다.

    요즈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국가에서 정책을 내놓으면 자칭 전문가나 각종 시민단체에서 이론적 근거를 들어 반대를 한다. 올바른 의견도 있겠지만, 맞은 것 같으면서도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와서 우리도 고속도로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하였다. 그러자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같은 당시의 야당 지도자들은 경부고속도로 공사장에 가서 드러누워 반대했다. 서울대학교 법대학장과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낸 황산덕(黃山德)박사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같은 작은 나라에서는 고속도로가 근본적으로 필요 없다. 그 땅에 차라리 콩을 심는 것이 국가적으로 볼 때 더 이롭다”라는 내용의 글을 동아일보(東亞日報)에 실어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그때 고속도로를 닦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최고 지성이라는 사람의 판단력이 이러했다.

    지금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두고서도 지식인들이 집단적으로 반대운동이나 찬성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 운하전문가들이 모여서 진지하게 논의하고, 운하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의 사례를 잘 참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질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處士)들이 자기 좁은 안목에서 멋대로 주장하는 것을 듣고 국가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근년에 그런 잘못이 이미 많이 있었는데, 다시 그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

    * 處 : 곳 처. * 士 : 선비 사. * 橫 : 가로, 멋대로 횡.

    * 議 : 논의할 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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