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7일 (화)
전체메뉴

[금요칼럼] 한미 FTA,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첨병 - 서익진(경남대 교수)

  • 기사입력 : 2006-11-03 00:00:00
  •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벌써 4차례나 이루어졌다. 진전이나 성과가 있네 없네 말도 많고. 연말 마무리 일정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그동안의 찬반논쟁을 통해 사전준비 부족한 졸속협상. 4대 선결조건의 수락 등 굴욕협상. 비공개 밀실협상 등 절차상 중대한 하자들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득실에서도 “손실은 명확한 반면 이득은 불확실하다”는 총평을 뒤집을 만한 설득력 있는 논거가 제시되지도 못했다. 이와는 달리 한미 FTA의 성격에 관해서는 활발한 논의는커녕 제대로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neoliberal globalization)를 실현하는 최신 수단으로 간주된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부 개입의 극소화. 전면적인 상품화. 제약 없는 이윤 추구의 자유. 개인과 기업의 운명에 대한 무한한 자기 책임성을 찬양하는 극단적 자유주의이자 시장 만능주의이다. 그 교범은 개방. 규제 철폐. 민영화를 주된 정책으로 삼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이다. 그것은 개체(개인. 기업)의 이익을 집단(사회. 공동체)의 그것보다 우선시하며. 경제적인 것(이윤 등 소득)을 사회적인 것(국익. 공공성)보다 중시하며. 사적 계약이 공적 법률보다 위에 있다고 간주하는 이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세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첫째. 그것은 기업이 조달. 판매. 투자. 대차 등 그 활동을 범세계적으로 확장해가는 과정이다. 유럽의 한 초국적 그룹의 회장은 세계화란 “우리 그룹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자유.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자원을 조달하고 생산물을 판매하는 자유. 그리고 노동권 및 사회협약 관련 제약들을 가능한 한 가장 적게 감수하는 것”이라고 공언했다. 둘째. 세계화는 국민시장(경제)들의 경계가 철폐되어 글로벌 시장(경제)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에 따라 경쟁 역시 국제 경쟁(특정국의 시장에서 여러 나라의 기업들간의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무차별 무한 경쟁)으로 된다. 끝으로. 세계화는 글로벌 경제의 운용을 관장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형성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고유한 법과 제도. 규제와 관행은 폐지되고 동일화된다. 이 세 개의 과정은 각각 별개로 이루어지지만 그 전체로서 하나의 동일한 과정 속에 통합된다.

    이렇게 본다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란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관철되어 가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이 과정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이래 다자간협상의 틀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상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다자간협상이 기대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면서 각국은 양국간 FTA를 선호하게 된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그 수가 급속하게 늘어난 FTA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위에서 기술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규정을 공유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FTA가 동일한 내용과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체로 미국형. 유럽형. 개도국형의 세 가지 유형이 구별되는데. 미국형이 가장 포괄적이며 가장 높은 수준을 구현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다. 그래서 미국형 FTA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각개격파 방식으로 전파시키는 첨병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조항 몇 가지를 들어본다면. 포괄주의에 입각하여 공공서비스 등 모든 서비스 분야를 예외 없이 개방할 것. 투기성 증권투자나 적대적 인수합병(M&A) 투자도 신규 공장의 설립과 고용 창출을 가져오는 직접투자와 동일한 대접을 하도록 규정할 것. 투자 영입국의 공공당국에 의한 외국인 투자자 차별 조치를 금지할 것(이른바 내국인 대우). 환경 보호. 재래시장 등 사회적 약자의 지원. 공익이나 공공성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공적 규제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에게 대 국가 소송권을 부여할 것(이른바 분쟁해결절차). 협정의 내용에 위배되는 국내법이나 제도는 개폐할 것 등이다.

    한미 FTA는 미국형 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이고 최고 수준의 내용을 목표로 한다. 그것이 미국식 신자유주의 질서의 국제적 관철 수단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시장 개방을 넘어 경제통합을 노리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의 법과 제도. 심지어 경제 운용방식과 관행까지 버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의 미명하에 어메리컨 스탠더드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와 협상 대표들이 스스로 미국형 FTA를 최선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데 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