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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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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전원마을과 고령화 대책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6-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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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 평생 살고 싶다며 지난 70년대 시도 때도 없이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사가 주는 깊은 의미야 알았겠냐마는 반주가 없던 시절 장단맞추기에 좋아 메들리곡 1순위가 아니었던가 싶다. 같은 시절 유행한 번역곡 ‘언덕위의 하얀집’이나 이석의 ‘비둘기 집’도 폼잡고 목청을 빼다보면 그럴듯해 보였다.
    지금에 와서야 제대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노랫말에 담긴 전원주택은 초원까진 아니더라도 잔디깔린 정원 위에 나무나 벽돌로 지은 하얀집. 삼각지붕에 아치형 장미넝쿨 현관과 나무 울타리. 발코니는 기본이고 통유리 거실에다 벽난로까지 갖춘 집일 게다. 빨간 노란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한 나른한 오후. 이곳에서 님과 함께 흔들의자에 앉아 자식사랑 손자사랑으로 저무는 해를 바라볼 수 있다면 인생 성공작이랄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은퇴자들을 위한 이런 꿈같은 모습을 농촌에 옮겨 놓는다고 한다. 북한 핵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워 뉴스 한켠으로 밀려났지만 지난 주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원마을 페스티벌엔 4만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한국전쟁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60% 정도가 농촌이주·정착 의향이 있다는 농림부의 조사결과이고 보면 이상스런 현상은 아니다. 시기적으로 歸去來辭(귀거래사)가 썩 어울리진 않으나 노무현 대통령도 페스티벌에 참석해 “자연생태계가 복원된 농촌에서 좀 덜 바쁘게. 조금 느리게. 천천히 살면서 돈을 적게 쓰는 삶이 좋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고령시대에 대비해 2013년까지 서울 인근을 제외한 전국에 전원마을 300개를 조성할 계획으로 있다. 도시 은퇴자 등을 공동화된 농촌으로 흡수하면 농촌의 활력이 되살아나고 도시 실업자의 양산을 막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대안이라는 판단에서다. 당장 전국 20개 시군에 22개 마을 2천959가구를 조성중에 있고 도내에선 김해 여차. 의령 백곡 등 5개마을 395가구가 해당된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에도 그림같은 서구식 농가주택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굳이 정책실패로 자인한 ‘바다 이야기’를 들먹이고 싶진 않지만 ‘전원마을 이야기’가 도마위에 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먼저 도시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농촌에다 옮겨 놓지 않을까 걱정이다. 전원마을은 가구당 대지 3백평. 건평 30평 안팎에 비용이 2~3억원 정도 든다. 입주자들은 생활비는 차치하고 치료시설이나 편의시설이 부족해 뻔질나게 인근 도시로 자가용 나들이를 해야할 공산이 크다. 웬만큼 시골생활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골프채를 쥐던 손에 호미를 잡기가 쉽지 않다. 자연을 벗삼아 한가로움을 즐기는 것도 한때일 뿐 수시로 여행으로 소일할 게 뻔하다. 이러니 농민들과 소통이 제대로 될 턱이 없고 ‘끼리끼리 마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종 소작농’을 양산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도 어렵다. 기존의 농민들은 물론 빠듯한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그림같은 집’이고 일부 여유계층들만의 터전으로 농촌에 오히려 위화감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 ‘투기마을’이 될 개연성도 다분히 있다. 전원마을은 각종 혜택이 많다. 기반시설에 국고가 보조되고 일정액의 건축비는 저리대출이 가능하다. 도시주택을 팔면 조건에 따라 양도세 비과세 등 특례도 있다. 거주목적이 아니라 주말 별장용 눈가림도 마음먹기 달렸다. 부동산업자들 전언으론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여유자금이 몰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페스티벌때 벌써 그런 조짐이 보였다.

    어쨌든 참여정부의 야심찬 청사진에 초를 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농촌사회의 다양화를 위해 학식과 값진 경험을 갖춘 각계각층의 유입은 바람직하다. 다만 전원마을에 입주할 정도라면 각자 자력으로 전원주택 건립이 가능한 부류라 볼 수 있다. 전원마을에 국고와 지자체 자금을 투입하기에 앞서 지자체에서 도맡아 상하수시설을 비롯 개개인의 주택건립을 원스톱으로 도와준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기왕에 계획한 예산은 도시에서 일자리 찾기에 지친 영세고령자들의 귀농사업에 돌리면 어떨까. 이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식량안보의 굳건한 역군이 될 수 있다. 집단농장이나 양봉단지 등등 일자리 마련은 지자체가 하기 나름이다. 농촌빈집을 개량해 임대하거나 매입토록 한다면 보금자리 걱정도 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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