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7일 (화)
전체메뉴

[금요칼럼] 미국의 쌍둥이 적자와 한국의 쌍둥이 흑자 - 서익진(경남대 교수)

  • 기사입력 : 2006-09-29 00:00:00
  •   
  • 세계경제의 아킬레스건이 1조 달러를 상회하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의 결합을 지칭하는 미국의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있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로 누적된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야기했던 위기감은 결국 1985년의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을 비롯한 여타의 선진국들의 통화의 인위적인 평가절상으로 해소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무역흑자와 재정흑자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는 물가안정 하의 고도성장이라는 ‘신경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반면. 일본은 ‘상실의 10년’으로 상징되는 장기공황의 늪에 빠졌고. 유럽나라들은 저성장과 고실업의 장기 지속이란 고통을 겪게 되었다.

    21세기 벽두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미국은 ‘IT주가폭락’과 엔론사 등이 저지른 일련의 스캔들로 신경제의 종말을 맞게 된 반면. 일본과 유럽은 성장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제 또 다시 확대일로에 들어선 미국의 무역적자는 중국을 필두로 유럽과 일본 및 한국 등 나머지 아시아 나라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 등 전비 지출의 확대로 급증하고 있는 미국의 재정적자는 막대한 외환을 누적시킨 동아시아 나라들로부터의 자금 유입에 의해 보전되고 있다.

    요컨대 세계경제는 미국이 무역적자를 통해 나머지 세계로부터 수입을 확대하고 그 대가로 지불된 달러가 다시 미국의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재환류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달러의 글로벌 순환 회로를 통해 미국 국민은 엄청난 빚을 바탕으로 소득 이상의 소비를 하고. 미국 정부는 일방적인 패권주의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달러를 매개로 한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의 작동 메커니즘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달러의 발행국이 아닌 나라들에 의해 보유·운용되는 달러의 규모가 누적적으로 증대되고. 이는 달러의 대외가치의 하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달러의 지속적인 약세야말로 오늘날 유로화. 엔화. 원화의 강세 기조를 떠받치는 근원적인 요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원화와 엔화의 대외가치의 변동은 중요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엔-달러 환율도 원-달러 환율도 하락하고 있지만. 원화의 절상폭이 엔화의 절상폭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원-엔 환율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일본은 무역흑자만큼의 자본수지 적자로 엔-달러 환율의 하락 압력을 완화시키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무역흑자 못지않은 자본수지 흑자를 올리고 있어 원-달러 환율은 구조적인 하락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한국의 ‘쌍둥이 흑자’가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달러 환율과 원-엔 환율의 동반 하락은 한국의 수출에는 치명타를 가하는 반면 수입 증가를 조장함으로써 무역흑자 기조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원화 가치의 상승으로 더욱 탄력을 받은 해외소비와 해외투자는 서비스 수지의 적자폭을 더욱 확대시킨다. 이 양자의 결합으로 최근의 분기별 경상수지는 이미 적자로 돌아섰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우리의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적자로 반전될 것이고. 이는 ‘쌍둥이 흑자’로 인한 모순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 해소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무역적자는 실물경제의 애로의 반영이자 이를 조장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해법은 국내의 풍부한 외환을 해외로 내보냄으로써 자본수지의 흑자를 줄이는 것이다. 지금처럼 해외소비와 해외투자를 늘리는 것이 그 한 방법이라면. 장차 해외대출을 늘리는 것은 또 다른 해법이 될 수 있다. 전자의 방법에서는 건전한 해외소비와 생산적인 해외투자를 조장함으로써 그 폐해를 줄이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후자의 방법과 관련해서는 대 개도국 대출을 늘림으로써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을 펼침과 동시에 개도국으로의 자본재 수출의 증대를 도모하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이렇게 본다면. 경제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승자는 없으며 일방적인 이득의 지속도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자는 나쁘고 흑자는 좋다는 것도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로 패권을 행사하고. 한국은 ‘쌍둥이 흑자’로 곤란에 처해 있다. 세상만사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중요한 것은 모순과 곤란을 예견하고 사전에 현명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경제의 작동방식과 그 속에 내재된 모순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세계경제의 작지 않은 일부이면서 이미 그 속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경제라면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