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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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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김지사와 전공노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6-09-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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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을 써서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남이 나의 글을 어떻게 평가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안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예전부터 책을 줄 때 청람(淸覽)이나 청감(淸鑑)이란 말을 즐겨 써 왔다. 맑은 감식력으로 살펴 보아달라는 뜻이다.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어 일종의 겸손이기도 하면서 여차하면 피난처 구실도 했다. 작금의 ‘김태호 지사와 전공노 문제’는 꺼내기 어려운 화두다. 접점없이 평행선을 달린다면 그래도 낫다. 마주 보고 서로 달려오는 형국이다. 지난 주말 창원에서 열린 전국공무원노동자총궐기대회는 다행히 별탈없이 끝났지만 대격돌의 예고편이었다. 여기다 대고 ‘훈수’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로선 김지사와 전공노에 어떤 말을 한들 귀담아 듣지 않고 곧 흘려버릴 가능성 높아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도 청람의 심정으로 몇마디 한다.

    먼저 김지사의 ‘법과 원칙’은 공무원이라면 지켜야 할 철칙이다. 불법단체인 전공노와는 대화를 하지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는 상당한 공감을 사고 있다. “비록 이 길(전공노와의 싸움)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며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화를 하려면 합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일갈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많은 공무원들이 국민에 대한 공복으로서 사명감을 다하는 터에 일부 세력이 근무지를 이탈해 정치투쟁에 참여하고. 전시대비 훈련인 ‘을지/포커스렌즈 연습’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공무원인지 의심스럽다며 이런 사람이 앞장선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격려의 글도 쏟아진다. 모 국회의원은 대통령감이라고 추겨 세운다. 김지사의 뒤엔 행정자치부란 든든한 ‘빽’도 있다. 행자부는 ‘전공노 사무실 폐쇄령’으로 힘을 보탠다.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 단체장이 앞장 서 싸워주니 밑질 게 없다.

    김지사가 원했던 원치 않았던 행자부를 대신해 ‘총대’를 맨 꼴이 됐고. 경남이 전국 공노조와 대리전을 치러는 모양새가 됐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루비콘 강을 이미 건넜다. 그러나 김지사는 이즈음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전공노 소속원들은 노조원이자 공무원이라 한편으론 한 식구다. 여기서 몇가지 의문이 나온다. 지난 전공노 간부들 해임은 미운 오리 털 뽑듯 했는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이었는가. 예고한 집회 참가자 선별 징계로 이참에 무우 뽑히듯이 전공노 뿌리가 뽑힐 것인가. 잔디나 고구마 뿌리처럼 서로 연결돼 있을 것인가. ‘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 다스리는 법은 없다(有治人無治法)’는 말이 있다. 전공노는 ‘엄연한 현실’이다. 딱딱하게 법만을 지키는 것이 인정사리에 맞는 것인가.

    다음으로 전공노를 보는 도민들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공무원은 공무원다워야 한다는 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올해 초 합법화의 길이 열렸는데도 법외노조로 남겠다는 입장을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가입범위나 교섭대상이 제한적이라 ‘무늬만 합법화’란 주장엔 귀를 기울이다가도 단체행동권 운운하면 고개부터 돌린다.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사사로운 목적으로 출발하진 않았겠지만 집단의 이기주의로 비치는 경향도 짙다. 이번 갈등의 단초인 ‘인사협약 부분’ 등도 따지고 보면 집단이기의 연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많은 이들이 결성당시 기대했던 것은 부정과 비리에 대한 내부 고발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공무원사회가 그렇게 맑아졌는가.

    진보의 선배격인 신영복 교수는 저서 ‘강의’에서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시기적으로 초기 단계엔 그 뜻을 널리 천명하고 세를 계속 불려 나가면서 주변에 있는 비주류도 멀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가 아니라면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난 집회에서 보듯 ‘막는 공무원’이나 ‘강행하려는 공무원’이나 또 다시 이를 되풀이 한다면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작금의 김지사와 전공노의 자세는 갈데까지 가보겠다는 식으로 비친다. 옛 현인들은 이런 상황에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권했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면 그 처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진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눈을 질끈 감더라도 서로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여줄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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