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7일 (화)
전체메뉴

[금요칼럼] 경제학의 기본밖에 모르는 FTA 찬성논리 - 서익진(경남대 교수)

  • 기사입력 : 2006-09-01 00:00:00
  •   
  • “경제학 기본도 모르는 FTA 반대논리”. 알만한 중앙지에 실린 자유주의의 대변인격인 인사가 쓴 칼럼 제목이다.
    그가 말하는 경제학의 기본이란 비교우위론이다. 현실에서 관철되는 건 비교우위론인데. FTA 반대논리는 절대우위론에 입각해 있다는 주장이다.
    논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례로 드는 것이 젊은이와 노인이다.
    절대우위론에 따른다면 젊은이가 노인에 비해 무슨 일이든지 더 잘 할 수 있으므로 도시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도 농촌의 농사일도 모조리 젊은이가 하게 되고 노인들은 실업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에서는 농사일이 노인의 일이 되어 있다.
    이는 비교우위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농사일을 젊은이가 노인에게 양보해서가 아니라 젊은이는 상대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게 이익이고 노인은 젊은이보다야 잘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농사일에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절대열세에 있는 개인이나 나라도 상대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가질 수밖에 없도록 논리가 짜여 있어. 일방의 독식은 불가능하고 서로 한 산업씩 나누어가진다.

    FTA로 무역이 자유화되면 비교우위 원리가 작동하게 되고 각 국은 상대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산업에 특화하는 산업구조조정이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일자리 수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 따라서 FTA로 전직에 따른 고통은 있겠지만 결국은 모든 실직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인 바. 실직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FTA 반대자들은 이러한 경제학의 ‘기초 중에서도 기초’인 비교우위의 원리를 모르는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날의 FTA의 내용과 성격은 과거의 FTA와는 다르다는 점. 그리고 FTA의 상대방이 어느 나라냐에 따라 그 효과는 엄청 다를 수도 있다는 점 등은 차치해두고. 비교우위 이론과 고용 효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간략한 검토를 위해 ‘경제원론’의 페이지를 더 넘겨보자. 이 이론은 다른 모든 경제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일련의 가정들을 전제로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가정이 2개국만 존재한다는 가정과 양국에서 무역 개시 전에도 후에도 완전고용이 보장된다는 가정이다. 비교우위론을 처음 만들어낸 영국의 리카르도가 살았던 약 2세기 전의 세계경제는 진정한 국제무역이 시작되던 시대여서 2국 모델은 타당했다. 그리고 당시의 산업혁명은 수많은 새로운 노동집약적 제조업들이 탄생시키던 시대여서 농촌의 과잉인구는 도시의 제조업에 의해 충분히 수용될 수 있었다. 더구나 당시의 기술수준은 아주 저급하여 농사꾼이 바로 공장(당시는 공장제수공업이나 단순기계작업)에서 일할 수 있었다. 전직은 상대적으로 쉬웠고. 일자리는 급속하게 늘어나는 추세였던 것이다.

    오늘날은 이와 판이한 세상이다. 다자간 무역자유화가 이미 상당히 진전되어 있어 FTA의 효과는 더 이상 2국 모델로만 파악될 수 없다. 장기 실업과 사회적 배제(노동시장에서의 최종적인 탈락)가 고착된 데다가 기술발전은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노동절약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전직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며. 정보화의 진전은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없는 사람은 아예 전직 자체를 꿈도 꿀 수 없게 만드는 시대이다.

    한미FTA 연구보고서들이 제시하는 한국의 고용효과를 보자. 대외경제연구원(KIEP)은 체결 후 10년간 1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며 그 대부분은 서비스 업종이라고 본다. 미국제무역위원회는 아예 고용효과 관련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농가인구 350만명 중 절반은 농촌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한다. 농업의 소멸이 국민경제에 나아가 국가안보와 자연환경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라는 진짜 문제는 논외로 하자. 설혹 새로운 일자리 10만개가 생긴다 해도 이는 청년실업자의 차지가 될 공산이 크다. 농사일을 버려야 할 100만이 넘는 농민들은 과연 어떤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기초이론일수록 현실과 역사에 동떨어진 가정들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를 통해 이해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론이 현실과 괴리되면 현실이 수정되는 게 아니라 이론이 수정된다. 이것이 이론과 학문의 발전과정이다. “경제학의 기본도 모른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경제학의 기본밖에 모른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개방(강화) 자체가 아니라 개방의 방법(상대의 선택. 사전준비. 사후대책)이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