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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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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사법부의 위기와 외부통제의 필요성

  • 기사입력 : 2006-08-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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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마 믿고 싶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청렴하고 가장 정직하며 가장 굳건하고 가장 정의롭다고 믿었던. 따라서 가장 존경받는 집단의 일원인 현직 판사가. 그것도 차관급으로 대우받는 고법 부장판사가. 사건에 관련하여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았다니......

    주기적으로 법조 비리가 터져도 그것은 변호사나 검찰과 관련된 것이었지 판사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법원 안에서 비리가 터져도 역시 사무직원의 비리였지 판사들의 비리는 아니었다. 그러기에 필자처럼 법을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법관의 청렴성과 성실성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사실로 믿고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국민이 당사자주의가 지배하는 근대적 사법구조를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오해라고 믿었고. 국민 다섯 중 한 사람이 민·형사소송과 관련하여 직접 청탁을 해보았거나 주변에서 청탁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해도. 법조 브로커에게 속은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소송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간혹 “판사가 저쪽(상대방 당사자)과 친하다”거나 심지어 “판사가 돈 먹었다”는 푸념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역시 당사자주의 소송절차에 무지한 우리 국민이 주장책임과 입증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패소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자신 있게 강의해 왔다.

    그러나 본인의 단호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일 밤 전직(사실은 사표가 수리된 지 며칠 안 되므로 현직이나 다름없다) 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01년 12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는 동안에 소송사건과 관련하여 브로커 김 모씨의 청탁을 받고 재판에 힘을 써주는 대가로 4차례에 걸쳐 현금 4천만원과 7천만원 상당의 가구와 카펫 등을 받았다는 혐의사실의 개연성을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간직해온 법원과 법관에 대한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판사가 2천명이 넘는데 그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을 것 아니냐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탁월한 실력과 투철한 도덕성과 굳건한 정의감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신뢰에 기초하지 않고는 사법부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미구멍 하나가 제방을 무너뜨린다.

    사법부 스스로도 위기감을 느끼고 여러 가지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린다. 그러나 그러한 대책들이 과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앞으로 법관 비리의 발생가능성을 차단하는 완벽한 방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완벽한 대책을 위해서는 철저한 원인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법원은 비리의 원인을 주로 연임제도를 포함한 법관 인사제도에서 찾는 듯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법조직의 폐쇄성과 그로 인한 통제시스템의 결여에서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판사는 최고의 능력과 성실성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아 왔고. 또 실제로 대부분 그러한 평가는 사실에 부합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법조직은 극도로 폐쇄적이었고. 판사에 대해서는 통제의 시스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적인 감찰제도가 있긴 하지만. 판사들에게 얼마나 실효적으로 작동해 왔는지는 미지수이다. 법관징계제도나 연임제도는 통제제도로서의 의미를 거의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정의(情誼)적인 사회에서 내부적이거나 자율적인 통제는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결국 해결방안은 외부적 통제시스템의 확립에서 찾아야 한다. 법관의 인사와 감찰. 징계 및 연임결정에 시민사회의 대표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법관 비리에 대한 수사는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검찰이 담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 법관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만을 전담하는 기구가 따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사들 스스로 지나친 엘리트의식을 버리고 사법부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력을 행사하는 수임기관으로서 국민의 통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자연스레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영규(경남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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