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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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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학교운영위원님들께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06-07-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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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시대 小國(소국)이던 鄭(정)나라는 재상 子産(자산)이 나라 살림을 잘 챙기고 외교 분야에서 업적을 쌓으면서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어느 날 대신 子皮(자피)가 尹河(윤하)라는 젊은이를 파격적으로 자기 封邑地(봉읍지)의 大夫(대부)로 삼으려 하면서 “차차 배워서 하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子産이 이렇게 타일렀다. “대인께서 옷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시험삼아 해보라고 비단을 맡기지 않을 겁니다. 하나의 省(성)이나 지방이 한 필의 비단보다 못하단 말입니까.” 子皮는 감탄하면서 그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고 한다<左傳 襄公(좌전 양공)31년>. 여기서 操刀傷錦(조도상금)이란 말이 나왔다. 한자풀이로는 ‘칼을 잘못 잡아 비단을 버리다’는 뜻이다. 중요한 일을 잘못 맡겨 대사를 그르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는 31일은 교육위원을 선출하는 날이다. 도내에선 학부모위원. 교원위원. 지역위원 등 938개 학교 9천529명의 학교운영위원들이 9명의 교육위원을 뽑는다. 자천 타천의 교육위원 입지자들은 오늘(21일)부터 후보등록을 시작으로 10일간의 선거운동에 들어간다. 이들중 누군가가 비단보다 더 귀한 ‘경남교육’의 재단 일을 하게 된다. 이들이 비단을 버릴 지 고운 옷을 만들지는 칼자루를 맡기는 학교운영위원들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격에 맞는 사람을 뽑아 쓴다는게 말처럼 그리 쉬운게 아닐 것이다. 정직하고 깨끗하다는 것도 일을 맡겨보지 않고는 알아낼 재주가 없다.
    여기에다 과연 어떤 것이 ‘인재’이며. 어떤 인물이 ‘적재적소’냐고 다그쳐 묻는다면 이 역시 대답은 막연해진다. ‘인물론’에 관한한 유명저서만도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이란게 있다.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눈으로 봐서 고개를 끄떡일 수 있으면 무난하다 하겠다.
    물론 관념적 도덕론에 그치고 교과서적이랄 수 있겠으나 교육을 다루는 분들이라 원론에 충실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기준의 첫째는 교육위원은 교육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육위원은 교육·학예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중차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교육행정의 방향과 시책을 확정하고 예산편성과 결산의 승인 등을 통해 교육계획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하는 자리다.
    또 조례와 규칙의 제·개정과 함께 교육청 및 사업소에 대한 조사·감사로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 ‘차차 배워서 하면 충분한’ 자리가 아닌 것이다. 교육 관련 법규와 교육이론을 꿰뚫고 있는 전문성이 우선 필요한 덕목이란 얘기다. 하지만 전문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일선 교육현장과 교육행정을 두루 섭렵한 인물이라면 절반의 성공은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교육감을 견제하면서 상호 균형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경륜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교육위원은 그 누구보다도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요구되는 신분이다. 정치와는 달리 나라의 장래를 이끌고 나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다루는 특수성 때문이다. 지방의원이 유급화되면서 의정비를 받게 됐지만 무보수로 봉사하겠다는 자세가 그것이다. 모든 인간들의 욕심이 돈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볼 때 최소한 ‘돈’에서 먼저 자유로와야 이권개입에서도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임제한이 없는 것을 노려 3선 4선으로 교육위원이 아예 ‘직업’이 되다시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끝으로 교육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교육에 관한한 변화를 기다리지 말고. 변화를 구경하지 말고. 변화에 허둥지둥 끌려다니지 말고 분연히 일어서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딱히 검증하기가 싶지 않겠으나 교육의 자율성 확보와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리겠다는 신념이 있다면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치권에서 주민직선 법개정 움직임으로 학교운영위원들이 주인이 되어 교육위원을 뽑는 간접선거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얘기도 들린다. 앞서 子産의 충고대로 ‘선진경남 교육’에 딱 맞는 비단 옷을 만들 수 있게 학운위원들의 신중한 선택을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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