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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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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고스톱 규칙을 포커 규칙으로 바꾸라고?

  • 기사입력 : 2006-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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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FTA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다. 때늦은 감이 절실하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되고 논쟁이 더욱 불붙어 우리 국민들이 한미FTA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우리 경제 전반과 국민 개개인에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논쟁을 보면 추진 이유와 방법. 득실과 기대효과. 요구 및 양보사항 등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물음이 빠져있다. 그것은 바로 한미FTA의 본질 내지 특성에 관한 것이다. “도대체 한미FTA가 뭐길래”라는 질문이 빠져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FTA란 말 그대로 무역자유화에 관한 협정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한미 양국은 모두 OECD 회원국으로서 개방의 정도는 세계 최고수준이고 실물시장은 물론 금융시장까지 개방되어 있다. 무엇을 더 개방하고 자유화한다는 것일까? 정부가 자인하고 있듯이 현행의 FTA는 무역과 투자 그 이상의 것으로 국제협상에서는 ‘무역 플러스’ 즉 ‘WTO 플러스’라 지칭된다. 이 점은 한미FTA의 17개 협상분과의 면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상품무역. 무역구제. 농업. 섬유. 원산지/통관. 위생/검역. 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경쟁.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노동. 환경. 분쟁해결/투명성/총칙인데. 상품무역은 겨우 그 한 분과에 지나지 않으며. 이미 상당히 낮은 수준인 관세율의 인하/철폐가 주된 사안이다.

    요컨대 한미FTA는 통상 생각하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경제통합협정에 가까울 정도로 경제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한다. 이른바 ‘포괄적 최고수준의 FTA’이다. 따라서 FTA만큼 그 이름이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용어도 없다. 이 점이 한미FTA의 본질을 은폐하고 착시를 유도한다.

    각 분과마다 쟁점사항이 있고 독소조항이 있다. 몇 개의 사례만 들어보자. 무역구제분과에서 미국은 우리의 섬유나 철강에 곧잘 부과되는 반덤핑관세나 상계관세 발동요건 완화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우리의 자동차 세제는 바꾸라 한다. 쌀은 제외된 농업분과에서 미국은 우리의 농업시장의 완전개방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농업보조금은 철폐할 수 없다 한다. 원산지분과의 경우. 홍콩이 인정했던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요구를 미국은 묵살했다.

    섬유제품의 원산지 판정기준을 미국이 섬유사로 고집한다면 우리의 섬유제품 다수는 한국산이 아니게 되고 따라서 관세혜택을 받을 수 없다. 투자분과에서 투자자를 지나치게 넓게 규정함으로써 투기성 펀드도 합법적인 투자자로서 각종 보호 혜택을 받게 되고. 외국인 투자자에게 현지고용. 현지부품조달. 기술이전 등 어떤 이행의무도 부과할 수 없게 되면 투자유치효과는 어찌 되는가. 분쟁해결분과에서 ‘투자자 정부소송제도’의 도입으로 외국인투자자는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빌미로 국내법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제법정에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금융서비스에서 국경간거래의 허용으로 피투자국에 현지법인의 설립 없이 통신. 우편. 인터넷 등으로 온갖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투자도 고용도 없지만 고객의 클레임 제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지적재산권(특허권. 저작권. 상표권 등)의 강화는 특히 값싼 복제약품의 소멸을 초래함으로써 국내 약값은 폭등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미FTA로 대변되는 신FTA의 본질은 아직은 개방도가 낮은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넘어서 경제운용 관련 법. 제도. 규칙. 관습 등 통칭 규범의 통일에 있다. 그런데 미국은 자국 규범이 글로벌 스탠더드이므로 자신은 바꿀 필요가 없고 상대방더러 바꾸라고 강요한다. 마치 고스톱 규칙을 포커 규칙으로 바꾸라는 거나 다름없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한국정부는 생각도 배알도 없는 것 같다. 무릇 각국의 법. 제도. 규칙은 고유의 역사. 문화. 환경. 관습의 반영이고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 통합된 한미시장에서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미국의 덩치는 우리의 21배이다) 차별도 특혜도 없이 공평하게 경쟁하는 (이른바 내국인대우) 규칙(협정)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공평이 실체적인 불공평을 감출 수는 없고. 법이 공평하다고 법 적용도 공평한 건 아니다.

    TV토론에 나온 우리 협상대표 왈 “스크린 쿼터 없어도 미국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수출하면 된다”. 방청객의 야유가 터진다. 이런 사람을 협상대표로 삼은 노 대통령이 안쓰럽기 짝이 없지만. 잘못된 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의 몫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서익진(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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