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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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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스승의 날을 恩師의 날로

  • 기사입력 : 2006-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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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핸드백/지갑 385.000원/155.000원. ××× 모시메리 세트(남/여) 각 138.000원. ×× 셔츠+빈치스타이+카우스버튼 120.000원/150.000원…….


      지난 주 한 일간지에 실린 어느 백화점의 전면광고 중 몇 토막이다. “사랑과 감사의 사은 대축제”. “스승의 날 인기선물 대특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광고를 보면서. 야릇한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얼마짜리를 선물해야 할지. 지갑과 가계부를 번갈아 확인하며 마음을 졸이는 학부모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필자가 너무 과민한 탓일까.


      연중 기념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스승의 날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1958년 5월 충남 강경의 한 여고생들이 병중에 있는 교사와 퇴직한 은사를 찾아 위문하면서 비롯된 스승의 날이 10년도 안 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마침내 1982년부터는 정부의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어 국민적 축일로 자리잡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교원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존경이 크기 때문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스승의 날이 적지 않은 학부모와. 또한 적지 않은 교원들 스스로에게 부담스러운 날이 되고 있는 것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금년 스승의 날에는 전국 초·중·고교의 70퍼센트 이상이 교문을 닫았다고 한다. 막상 그 날에는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노래와 함께 한 야당 국회의원이 ‘교원의 촌지수수 근절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며 전해졌다.


      오죽하면 어느 날보다도 스승과 제자가 더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 부둥켜 안아야 할 스승의 날에 휴교를 할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임을 알면서도. 비겁한 책임회피라는 비난에서 그 날 하루만 문 닫으면 촌지가 없어지느냐는 비아냥에 이르기까지 비판의 여론이 거세다.


      그러나 스승의 날 휴교는 잘 한 일이다. 나아가 스승의 날을 폐지하는 것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스승의 날마다 필자가 갖는 감상(感傷)이다.


      사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필자에게는 촌지는 남의 나라 일이다. 스승의 날이 되어도 학생 대표들이 카네이션 한 송이 꽂아주고. 마침 수업이 있는 경우에는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박수 한 번 쳐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면서도 스승의 날에는 할 수만 있다면 수업을 쉬고 싶다. 촌지때문이 아니라 교단에 선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학생들 앞에서 카네이션과 박수를 받을 때는 어색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스스로 학생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스승’이 되기에는 멀었다고. 인생의 사표가 되기에는 자신의 그릇이 너무 작음을 슬퍼하면서. 그저 내가 맡은 전공과목이나 열과 성을 다하여 공부시키는 것이 내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필자에게는 ‘스승’이라는 말조차 거북하다. 그러기에 차라리 스승의 날이 없었으면 한다. 그 날 하루 부끄러움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기에.


      스승의 날을 학년말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다고 한다. 하지만 날짜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스승에 대한 감사와 칭송은 그의 교단 앞을 떠난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 제격이다. 당장 교편 하에 있는 제자에게서 받는 칭송과 감사가 엎드려 절 받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스승에 대한 진정한 감사는 학생이 졸업하여 한 인간으로 자립한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스승의 날’은 현재의 교사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날이 아니라 옛 스승을 찾아뵙고 진정한 감사의 정을 전하는 ‘은사의 날’로 바뀌어야 한다.

    최영규(경남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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