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6월 29일 (토)
전체메뉴

(137)苛政猛於虎: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

  • 기사입력 : 2006-03-21 00:00:00
  •   
  • 苛政猛於虎(가호맹어호)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

        공자(孔子)가 어느 날 태산(泰山)을 지나가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그 울음 소리 속에는 겹겹의 슬픔이 쌓인 듯했다.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로 하여금 그 사유를 물어 보게 했다. 그 부인이 답하기를. “이전에 저의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죽었습니다. 그 뒤 남편이 또 물려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저의 아들이 또 물려죽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그런데도 어째서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소?”라고 물었더니. “여기는 가혹(苛酷)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그 여인이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하는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오.”

        필자는 얼마 전에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말을 눈으로 직접 목도(目睹)하였다. 지난 3월 1일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를 북한 당국에 넘겨주는 인도식에 참석하는 단원의 한 사람으로 개성(開城)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도착하는 순간 맨 처음으로 느낀 것은 체제(體制)고 이념(理念)이고 할 것 없이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經濟)라는 것이었다.
        인도인수식 행사를 개성 성균관(成均館)에서 했는데. 성균관의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등 옛날의 현액(懸額 : 집 이름을 써서 단 현판)은 다 없애 버렸고. 건물 내부에도 본래 있어야 할 기문(記文) 등 성균관의 역사를 알려 주는 글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정문에 ‘고려박물관’이라고 해 놓았는데. 진열된 유물도 초라하지만. 유물 설명서 첫머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이 관람하시고 …”. “영명하신 김정일장군께서 가치를 인정하시고 …” 등등의 문구로 시작되었다. 그 동안 전통문화의 교육이 단절되었든지. 여자 안내원이 나와서 성균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는데. 성균관과 사찰도 구분 못했다.

        행사장에 설치한 탁자 의자 마이크 난로 등도 남한에서 화물차로 운송해간 것이었고. 나중에 북관대첩비를 실은 차도 달라고 해서 북한에 주고 왔다.
    그 날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도 개성 시민들은 모두 밖에 나와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낮 동안은 집안에 난방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이 사는 집은 40~50년 동안 손 한 번 안 봤는지 폐허 같았다.
        점심 식사한 호텔이라는 곳도 식사하는 공간만 난방이 되고. 나머지 기념품 파는 상점 등에는 난방시설이 보이지 않았고. 전력시설이 부족한지 전등도 켜지 않은 채 물건을 팔고 있었다.

        늘 한번 봤으면 했던 송악산(松岳山)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하얀 민둥산이었고. 그 밖의 모든 산이나 들판에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상태였다.
        돌아와서도 못사는 친척집에 갔다 온 것처럼 여러 날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머리 속에 남은 인상은 ‘비참’ ‘암울’ ‘황량’ 뿐이었다. 북한 제2의 도시가 이 모양이니. 농촌은 어떠하겠는가?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김일성 부자가 부르짖은 주체사상의 결과가 과연 이러한가?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말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 苛 : 가혹할. 가. * 政 : 정사. 정. * 猛 : 사나울. 맹. * 於 : …보다. 어. * 虎 : 호랑이. 호)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