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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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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을유(乙酉)년을 돌아보며

  • 기사입력 : 2005-12-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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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을유년은 예년에 비해 참으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많은 한 해였다. 지난 1월에는 보고서 형태로 쓰여진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즉. 여성 연예인 수십명의 부적절한 사생활을 담은 미확인 신상정보가 인터넷상에 무차별 유포돼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2월에는 영화 ‘주홍글씨’에서 알몸 연기를 한 후 우울증에 시달려 온 영화배우(고 이은주씨)가 목숨을 끊어 자살 동기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지난 7월에는 MBC ‘음악캠프’ 생방송 도중에 록밴드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순간 성기를 노출하는 방송 사고가 발생했으며. 지난 10월에는 경북 상주 시민종합운동장에서 열린 MBC가요콘서트 공연장에서 일시에 몰려든 인파로 인해 어린이와 노인등 11명이 압사했는가하면. 드라마에서의 음부노출사건 등등 연예·방송 관련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 국민들은 연예인과 방송사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 하면서 유사 사건이 재발되기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난 6월. 경기도 연천군에 소재한 한 육군 사단 최전방 감시초소에서 김모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을 난사해 장병 8명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사고가 생겨나자 또 한 차례 국민들은 놀라움과 함께 밀폐된 군생활에 대한 개선을 강도 높게 주장했다. 지난 10월의 수입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검출돼 수입이 금지되자 한·중간 외교마찰로 번졌으며. 일부 국내산 김치에서도 기생충알이 있음이 밝혀져 한때 김치 소비량이 크게 줄어들기도 했다. 여기에다 중국산 수입어류와 국내산 양식 물고기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한층 더 고조됐던 것이다. 적어도 먹거리 만큼은 걱정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관계 당국은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여의도에서의 농민 시위 진압과정에서 2명의 농민이 숨진 가슴 아픈 사고가 생겨났다. 이 상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년동안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을 두고 갈등을 빚었으며 이 지리한 싸움은 쉬 매듭지어질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국정원 불법도청사건과 관련해 전임 국정원장들과 간부가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국정원 개혁을 소리높여 외쳤다. 이것은 곧 국정원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황우석 파문’이라고 할 것이다.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로 국민적인 과학 영웅 대접을 받았던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의 논문조작과 연구성과에 대한 허위성이 밝혀지자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겪었다. 빠른 시일내에 충격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정말이지 말하기조차 숨가쁠 만큼 대형 사건·사고로 얼룩진 을유년이었다.

        내일은 올해를 마감하는 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가슴 뿌듯함보다는 후회가 앞선다. 연초의 바람과 계획대로 이루어진 일들이 별로 없는 가운데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므로 마음 한 구석에서 차가운 바람이 이는 듯한 허전함이 느껴진다. 이어령씨는 ‘차 한 잔의 사상’에서 “제야(除夜)라는 이 고별의 플랫폼에는 기적도 없고 흔드는 손수건도 없고 다시 돌아온다는 언약도 없다. 다만 그렇게. 그것은 아쉬움과 서글픔만 남기고 묵묵히 사라져 가는 것이다. 움직이는 우주의 질서에 한 점이 찍혀가려고 한다. 역사의 작은 종지부 하나가 지금 찍히려고 한다”고 했다. 한 해의 끝은 언제나 요란스럽지도 않고 거저 쓸쓸하게 종언을 고하지만 긴 역사의 흐름을 형성하는 경건한 종지부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해란 시간 단위는 편의대로 규정한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반복되는 우주질서 속에서의 1년을 의미한다. 선조들은 이러한 섭리를 일찌기 지혜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깨달아 1년단위로 매듭지은 것이다. “힘으로 가는 해를 잡을 길 바이 없어/ 예부터 가는 세월 꿈이라 했거니/ 이 인생 모르는 새에 늙는 건가 하노라”라고 읊은 어느 옛 시인의 글이 새삼 가슴깊이 다가온다. 어제(29일)밤에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700여 점포가 소실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밝아오는 병술년에는 사건·사고 없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좋은 일들만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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