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7일 (화)
전체메뉴

[금요칼럼] 빈곤 속의 풍요

  • 기사입력 : 2005-12-16 00:00:00
  •   
  • 박승훈(정치부 차장대우)

        ‘희망찬 80년대’라는 구호가 있었다. 유신 시절. 박정희 대통령 정부는 80년대가 되면 국민 1인당 소득 1천달러. 수출 100억달러가 되고 온 국민이 잘살게 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선전했다. 당시 구로공단과 마산 수출자유지역 등의 근로자들은 그 구호 속에서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박 대통령은 그 희망찬 80년대가 우리나라에 오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국민들은 그의 주장대로 집집마다 자가용을 두고 산 지가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때는 거의 모든 국민이 가난했기 때문에 더 이상 가난해질 것이 없어 너도 나도 앞만 보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IMF사태 와중에서 우리나라는 40년 개발신화가 폭발적으로 가라앉는 것을 경험했다. 국가 경제는 다행히 IT.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수출산업의 분발로 전체 수치상 성장으로 돌아섰지만. 개인들은 여전히 IMF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몰락한 중산층은 좀처럼 원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겨우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700만 근로자와 350만 농민. 400만 중소자영업자들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하게 이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2천800억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경제의 수출의존도는 93%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출의존도를 보이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IT.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수출산업의 성장에 따른 성과물은 좀체 국민경제 전체에 확산되지 않는다. 수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사내 협력업체에도 수출성과가 나눠지지 않는 형편이니 이들 기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먹고. 입으면서 소비해야 살 수 있는 중소자영업자들도 매출이 올라갈 수 없는 형편이다.

        대기업이 경영하는 백화점과 대형판매장들은 벌써 중소도시에서도 재래시장과 중소상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농민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올 가을 중국산 김치파동으로 배추값이 포기당 4천원으로 폭등하자. 이들 대형할인점은 배추를 미끼상품으로 활용. 포기당 500원으로 판매하면서 시장가격을 왜곡. 결국 배추 판매가 본업인 재래시장의 야채상들도 이 가격에 배추를 판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농민들은 배추값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쌀을 비롯한 농산물의 개방이 본격화되는 내년부터 농민들은 가히 심어서 팔 농산물이 없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돈 살’ 작물이 없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대기업들은 자신들 외의 여타 국민들에게 좀처럼 돈 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가 고비는 넘어섰고 앞으로는 파란불로 순항할 것 같지만 민생은 여전히 빨간불”이라고 말했다. 성장은 괜찮은데 양극화가 문제라는 말이다. 중산층이 서민 되고 서민이 빈민층 되는 현실을 대통령도 알고 정부도 알고. 국민들도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오는 2025년에 5만달러를 돌파.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에 오를 것이라는 보랏빛 전망을 내놓았다. 2050년에는 8만달러를 넘어 일본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로 붕괴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제는 이같은 수치가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그냥 수치라는 것을 실감한다. 분배가 절실하다. 일부에는 “양극화의 현실을 부자 때리기로 대응하면 성장하락과 분배악화의 악순환만 낳는다”며 분배정책을 ‘부자 때리기’로 ‘계층갈등을 유발하는 정책’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80~90%가 경쟁력이 없다고 이들을 모두 버리고 ‘선진국’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이 되면 무엇하겠는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