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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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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PD수첩을 위한 변명

  • 기사입력 : 2005-12-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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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훈 정치부 차장

        “눈덮인 들판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연구를 진행했다.” MBC PD수첩이 ‘난자 의혹’을 제기한 지 이틀 뒤인 지난달 24일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황우석 교수는 서산대사의 경구를 인용하면서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의 일과 성취 외에 보이는 게 없었고 한 템포를 늦춰 가더라도 국제적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이 소중한 진리를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며 그동안 떠돌던 난자획득과 관련된 의혹을 대부분 시인하던 그의 모습에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걸어온 한 과학자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섀튼 교수의 표현대로 인류사회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에 비견될 만한 엄청난 사건을 만든 그였지만. ‘국제적 눈높이’에서 살짝 빗겨난 ‘발자국’을 남긴 탓에 고귀한 연구의 성과물까지 의심받는 위기까지 내몰리게 됐다.
        물론 황 교수가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는 헬싱키선언으로 대표되는 생명윤리라는 것이 다분히 서양적인 잣대일 수 있다. 또 그러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황 교수팀의 연구성과를 깎아내려 결국 한국 생명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어떤 음모를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살 수도 있다. 공동연구자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황 교수팀으로부터 배아줄기세포 복제 기술을 전수받았던 섀튼 교수가 난자의혹을 암시하는 말을 남긴채 일방적으로 결별통보를 한 것도 마음에 걸리던 터였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민적 영웅’인 황 교수가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도록 강요한 현실에 분통을 터뜨렸고. 난자의혹을 방송했던 MBC는 여론의 몰매와 광고 중단사태로 일대 위기를 맞게 됐다. 정말 얄궂은 운명이다.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명윤리에 이어 황 교수 논문 자체의 진위 의혹이라는 2탄까지 내보내겠다며 호언하던 PD수첩은 그 자신의 윤리문제 즉 취재윤리라는 암초에 걸려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

        PD수첩이 황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의혹제기라는 ‘눈앞의 일과 성취’에만 관심을 가졌던 탓일까. 줄기세포 연구원을 포함한 취재원에게 으름장을 놓고 또 속이는 빗나가도 한참이나 빗나간 발자국을 남기게 됐다. 물론 PD수첩 취재팀이 미래에 한국을 먹여살릴 만한 독보적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폄훼하고. 훼방을 놓으려는 악의를 가졌다고 믿고 싶지 않다. MBC가 사과문에서 밝혔듯이 “한국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국제적인 지지 속에 보다 탄탄한 윤리적 토대를 갖추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차원”이었다는 말을 솔직히 더 믿고 싶다.

        PD수첩에 걸려온 제보의 진위 여부를 떠나. 취재팀은 제보를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을 법하다. 특히 그것이 생명과학의 거목인 황 교수의 연구활동과 관련된 것이어서 더욱 가슴 떨렸을 것이다. 권위에 도전해보자는 묘한 용기도 일어났을 테다. 사실 황 교수팀에 대한 생명윤리 논란은 황 교수의 논문을 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쌍벽을 이루는 네이처에 의해 이미 지난해 5월에 촉발됐다. 논문의 진위여부도 해외언론에서 걸고 넘어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PD수첩이 ‘한건’에만 눈을 돌리다 사실상의 종방이라는 부메랑을 맞았지만. 배아줄기세포 논란은 끝난 게 아니라 하나의 과정을 거쳤을 뿐이다.

        생명과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은 끊임없는 의문과 회의. 그리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한 단계씩 발전해 나가지 않는가. 현존하는 모든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과학의 발전도 또 사회의 발전도 까마득해진다. 그런 점에서 PD수첩의 생각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비록 그 대상이 황우석이라는 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라고 하더라도 의문부호를 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과학 연구에서 황 교수팀이 보다 곧고 선명한 족적을 남기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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