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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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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쌀비준안 '마침내'와 '기어코'

  • 기사입력 : 2005-11-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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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호 수석논설위원

        세계무역기구(WTO) 쌀협상 비준동의안이 그저께 국회에서 마침내(기어코) 통과됐다. 농민단체와 농촌출신의원 등의 거센 반발로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결과다. ‘마침내’란 표현은 다행이란 의미다. ‘기어코’는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해치울 수밖에 없었느냐는 울분이 담겨있다. 도민들이 지금 느끼는 심정은 어느 쪽인가. 워낙 복잡하고. 얽히고 꼬인 사안이라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농업통으로 불리는 두 의원의 말이 참고가 되겠다. 먼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간사로 찬성표를 던진 열린우리당 조일현(강원 홍천-횡성)의원의 말을 옮겨 보자. ‘쌀협상이 잘못됐으니 재협상하라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쌀협상 관세화유예 10년 연장 협상 결과는 최고는 아니지만 안 받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 비준을 안하고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 임한다면 우리 입장은 더 불리해진다. 밀려서 개방하면 그 피해는 농민이 먼저 받는다. 농민들이 10년이라는 기간을 벌고. 그 기간동안 경쟁 농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달 가까운 단식농성으로 뼈만 앙상이 남은 경남출신 민주노동당 강기갑의원이 동료의원에게 띄운 호소문을 요약해보자. ‘쌀은 우리 농업의 중심 기둥이며 식량자급에 절대적 품목이다. 지난 한해 동안 진행된 쌀협상의 결과는 10년 유예를 받아내는 대가를 너무나 크게 지불하여 최악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관세화가 유리한지 관세유예화가 유리한지 12월중 열리는 홍콩 WTO 각료회의 이후에 처리해도 늦지않다. 우리 농업을 살리고 농촌을 지키는 것이 어찌 농촌. 농업만을 위한 것인가. 농업은 언제나 통상의 자리에서 희생재물이 됐고 수출증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대세라며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호도되고 있다.’

        우리의 쌀이 개방의 도마위에 오른 것은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5년 WTO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후신으로 출범하면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정때 처음 등장했다. WTO의 탄생목적이 교역의 완전 자유화와 우리의 추곡수매 등 모든 보조금을 철폐한다는 데 있다. 당시 ‘우르르 쾅쾅’ 농민들의 가슴을 칠 줄도 모르고 UR을 우루과이에서 열리는 프로축구 리그쯤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순진했다고나 할까. 사실 라운드(round)란 게 권투시합처럼 치고 받는 횟수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상대방 있는 싸움인지라 밀고 당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라운드에서 다른 농산물을 개방하는 대신 쌀개방은 10년 뒤로 미루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DDA란게 또 튀어 나왔다. 라운드 대신 점찮게 아젠다(agenda. 의제)로 바꾸고 개발(development)이란 것도 끼워 넣었다. UR이 세계 농업을 시장지배의 원칙에 따라 재편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면 DDA는 이 원칙의 실질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른바 다자간무역협상체제로 관세부문이 핵심의제다. 여럿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상대가 상수(常數)가 아니라 변수(變數)인지라 풀기가 쉽지않은 고차방정식이나 다름없다. 내달 13~18일에 있을 홍콩 각료회의가 고비다.

        농민단체 등이 이 결과를 보고 비준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반해 정부측은 결과자체가 유동적인데다 개방이 유리하면 언제든 관세화할 수 있고. 국제간 신의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나간 일이지만 정부가 지난해 연말 맺은 협약의 쌀의무수입량 부문과 밥상용 시판 등이 원천적으로 잘못됐다는 게 농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전면적인 개방을 단지 10년간 연장한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다고 하지만 농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농민 자신들의 탓도 없지 않으나 이 기간 상호금융의 악성부채가 7조원에 달한다. 이제 앞으로의 10년간이 문제다. 정부는 119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존의 농업부문 예산에 햇수를 곱한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도하 언론과 전문가들이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으니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쌀문제는 후손을 위해. 또 통일을 대비한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도민들이 ‘마침내’와 ‘기어코’.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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