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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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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

  • 기사입력 : 2005-11-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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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훈(정치부 차장)

        진보와 보수의 경계는 무엇인가. 어느 세력이 또 어느 정당이 보수세력이고 진보세력인가. 또 국민 개개인인 ‘나’는 진보에 가까운가. 아니면 보수에 가까운가. 수년 전부터 불붙기 시작한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을 접하면서 이런 의문점을 던져본다. 이달 초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어디에 해당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보수’라는 응답이 34.7%. ‘진보’라는 응답이 32.5%였다. 같은 언론사가 지난 9월 초에 벌인 조사결과에서는 ‘진보’가 37.8%. ‘보수’가 31.3%였다. 이념적 성향은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와 같아 보수와 진보를 언제든 넘나들 수 있고. 또 10.26 재선거가 그 중간에 끼어 있어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사이에 국민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념적 성향이 이처럼 급격히 바뀌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가족이나 교육 등의 문제에서는 보수적일 수 있고. 그 역 또한 가능하다. 또 보수와 진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다분히 자의적으로 설정되기 마련이다.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이라는 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나 시민단체들로부터 수구보수로 비난받아왔던 한나라당은 ‘개혁적 보수’로 당의 노선을 설정. 보수이미지를 탈색시키려 하고 있다. 원조보수인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여러 구체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수구적이기 보다는 개혁적이고 혁신적인 경향을 보였는데도. 한나라당은 보수라는 말 앞에 ‘개혁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안심이 되는 듯하다. 열린우리당이라고 다르진 않다. 진보와 보수성향의 인사들이 동거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공식적으로 내놓는 노선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개혁’이다.

        어느 당도 당당하게 진보나 보수를 밝히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두 당을 아예 보수정당으로 한데 묶어버리니.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여간 억울한 게 아니다. 사실 정치적으로 자신을. 또 자당을 진보진영이라고 부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곧 좌파. 사회주의와 유사어 내지 동의어로 통한다. 이는 보·혁갈등이 빚어졌던 해방전후의 정치적 경험. 그리고 6.25전쟁 이후 한국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냉전이데올로기에 기인한 현상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닌 것같다. 이는 보수라는 용어에 ‘수구’ 또는 ‘꼴통’이라는 수식어가 흔히 따라붙는 현 정치상황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각각 ‘개혁적 보수’와 ‘중도개혁’ 노선을 표방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데서 연유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대립은 맥아더 동상철거와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두고 한바탕 회오리를 일으킨데 이어. ‘뉴라이트’와 관련해서는 총리와 보수세력이 서로 “문화지체” “정신지체”라며 설전을 벌이는 위태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념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사회단체들이 치고박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탈이념의 길을 걷고 있는 서구사회와 곧잘 대비된다. 그러나 오랜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거친 뒤 탈이념 사회로 진입한 서구와 그렇지 못한 우리 사회를 동일선상에 놓고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 상생의 미덕을 서로 모르는 바 아닐테지만. 그만두라고 해서 끝낼 싸움이 아닌 것이다.

        어차피 끝내기 힘든 싸움이라면 제대로 싸워봐야 한다. 물론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국민을 중심에 놓고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 그래야 이념적 대립과 갈등를 차츰 해소시켜 나갈 수 있다.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싸움 그 자체보다는 정부의 시장개입. 성장과 분배. 국가보안법 개폐. 교육정책 등 국민생활을 규정짓는 이슈들에 대한 사회적 합일점을 찾지 못한 바로 그것 때문이다. 진보니 보수니 어렵게 구분지을 필요도 없고. 좌파니 색깔론이니 서로 비난할 이유도 없다. 판단은 국민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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