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권수의 한자.한문 이야기] <44> 철면피(鐵面皮)
- 기사입력 : 2004-02-10 00:00:00
-
- 철면피(鐵面皮), 쇠로 된 얼굴 가죽
공자(孔子)의 말씀에 『자기 행동을 하는 데 부끄러워함이 있어야 한다
[行己有恥]』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지금 중국 북경대학(北京大學)의
교훈 가운데 한 구절이 되어 있다. 자기 자신을 알아 처신(處身)하는 데 염
치(廉恥)가 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염치가 없는 사람
을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여긴다. 누가 보아도 부끄러워할 만
한 일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염치 없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을 흔히 「철면피(鐵面皮)」라고 부른다. 「쇠로 된 얼굴 가죽」이라
는 뜻이다. 붉어지거나 수줍어할 줄을 모른다. 「후안무치(厚顔無恥 : 얼굴
이 두터워서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왕광원(王光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재주도 있고
문장도 잘 짓고 학문도 상당하여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그러
나 사람이 지조(志操)가 없고 너무나 출세(出世)에 눈이 어두워 못할 짓이
없을 정도로 염치가 없었다. 자기 상관은 물론이고, 자기에게 조금만 이익
이 되겠다 싶은 사람이면,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수시로 그 집을 들락거리
며, 하인처럼 굴었다. 그 사람의 종기의 고름까지도 빨아 줄 정도로 아첨
(阿諂)을 떨었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사람이 시라도 한 수 지으면, 그 시의 수준
(水準)은 차치하고서, 『정말 잘된 작품입니다. 이태백(李太白)이나 두보
(杜甫)인들 어찌 귀하의 시 수준에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정말 신운(神
韻 : 신비스러울 정도의 운치)이 도는 시입니다. 불후(不朽)의 명작(名作)
이십니다그려.』 등등의 말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稱讚)을 했다. 옆
에 있는 사람들이 언짢아 해도 조금도 거리끼지 않았다.
한 번은 어떤 다른 관리가 자기에게 아주 무례(無禮)한 짓을 했는데도,
화를 내기는 커녕 도리어 허허 웃고 넘겼다. 이런 줄을 알고 그 관리의 무
례는 날이 갈수록 정도를 더해갔다. 어느 날 그 관리가 술이 약간 취하여,
『오늘은 내가 당신에게 매질을 좀 하고 싶은데, 어떻겠소?』라고 한번 떠
보았다. 그러자 왕광원은, 『귀하의 매라면 영광(榮光)이지요. 기꺼이 맞겠
습니다』라고 하고는 등을 내밀었다. 그 관리는 정말 힘껏 매질을 하였고,
왕광원은 아픔을 참으며 화를 내지 않고, 여전히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그 다음날 왕광원의 친구가, 『자네도 사람인가?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가운데서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모욕(侮辱)을 당해?』라고 꾸짖었다. 『그러
나 그 분한테 잘 보여 나쁠 것이 무어가 있어』라고 태연하게 대답하니,
그 친구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 당시 이런 유행어가 있었다. 『왕광원의
얼굴은 두터워, 열 겹의 철갑(鐵甲)이라네.』
중국 역사상 출세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조사해보니, 「흑심(黑心 : 마음
이 검고)」 「후안(厚顔 : 얼굴이 두껍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성실하
게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대우 받는 세상이 쉽지 않은가 보다.
각종 선거(選擧) 때가 되면, 수많은 철면피들이 활동을 재개한다. 철면피
들이 생존하지 못하게 하려면, 국민 각자의 현명한 판단이 필수적이다.(*.
鐵 : 쇠, 철. *. 皮 : 가죽, 피)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