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II] 맛, 그리고... - 아구찜(6)
- 기사입력 : 2002-04-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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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오동동 한 아구찜 식당에 나들이 차림의 가족이 들어섰다.
메뉴판을 받아든 중년 여성이 서울 말씨로 『건아구가 뭐야? 생아구 주세
요』했다. 그러자 그 옆 테이블서 한참 아구찜을 먹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서울 말씨로 『마산에 아구찜 먹으러 왔으면 건아구를 먹어봐야죠』하고 주
문을 거들었다. 생아구는 부산이나 다른 몇몇 지역에서, 또 건아구는 마산
이 유명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서울 어느 아구찜 골목 간판에서 본 「마산」 「오동동」 「할매」 등의
글귀를 떠올리며, 마산에 들른 김에 그 원조집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또다
른 외지인이 마산 아구찜을 소개하는 모습은 그 유명세를 증거하기에 충분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구는 흔했다. 그물에 잡히기라도 하면, 험악하고
볼품없는 모양새에 『재수없다』며 바다에 버려지거나 뱃전에 팽개쳐졌던
아구였다.
그런 아구를, 황태처럼 바짝 마른 아구를 어쩌다 거둬 툭툭 칼질하여 콩
나물과 미나리를 손에 잡히는 대로 넣고 고춧가루로 양념하여 쪄서 먹어 보
았을 것이다.
우리 집이 제일 먼저니, 우리 집이 최초니 하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구
구한 원조 논쟁의 원시적 형태(?)는 그런 평범했던 일상의 연속선상에 놓
여 있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마산 오동동 일대에는 아구찜 전문 식당이 즐비한 채 성업 중
이다. 20년 이상된 식당부터, 새로 생겨 기존 전통에 도전장을 던진 곳에
이르기까지 골목이 비좁을 정도다.
아구가 갈수록 귀해지는데 아구찜 가게는 갈수록 늘고 있다. 유명세도 더
하고 있다. 묘한 반비례다. 하긴 아구의 흉한 모양과 기막힌 맛도 절묘한
반비례다.
아구찜의 쫀득쫀득한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차면 푸짐한 콩나물이 아삭아
삭 씹혀 보조를 맞춘다. 그 사이에 숨어 있던 미더덕이 상큼한 미나리 향
사이를 비집고 입안에서 톡 터지면 매콤한 맛이 뒤질세라 뛰쳐나와 온갖 양
념의 조화가 무엇인지를 고한다. 맛은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이, 아구가 당
뇨병이나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알려지자 그 몸값은 꾸준히 올랐다.
이제는 큰맘 먹고 사먹어야 할 요리가 되었다. 조금 서운하긴 해도 흔하
지 않게 먹는 만큼,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
을 게다. 그러나 그 위안만으로 그냥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도 적잖다. 아
구 애식가들은 어시장에서 직접 아구를 사서 요리해 먹기도 한다.
시장통에서 아구를 이러저리 뒤척이며 물좋은 놈을 고르고 있던 이정말
(64. 마산시 남성동)씨는 『가족들이 다 아구 요리를 좋아한다』며 『어시
장에서 아구를 싸게 사서 탕도 끓이고 찜도 해 먹는다』고 했다.
오동동 아구찜 골목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는 마산 어시장은 직접 요리
를 해 주지는 않지만 건아구와 생아구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아구만
전문적으로 파는 곳도 두어 곳 있다. 반평생을 아구만 팔아온 아구 할매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산 어시장 안에서 30년 가까이 아구만 팔아온 김옥순(60· 마산냉동)
씨. 새벽 한때만 30여 상자의 아구가 김씨의 손을 거쳐 마산 아구찜 골목으
로 흘러들어 간다. 뿐만 아니다. 이곳의 아구는 창원, 진주, 포항, 멀리는
광주까지 팔려간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사 가던 때도 있었다 한다.
아구는 다른 고기보다 무게가 훨씬 많이 나가, 다 자라면 보통 5~7kg이
고 큰 것은 10kg을 넘는 것도 있다. 예순을 넘어선 김씨의 허리는 세월과
아구의 무게를 함께 감당하기엔 자꾸 힘이 부친다. 그래서 새벽에는 아들
둘이 나와 일도 돕고 배달도 한다.
가판에 둔 작은 아구를 가리키며 『요즘에 잔 아구를 마구 잡아 큰 아구
가 귀하다』며 『작은 게 클 수 있도록 해야된다』고 말하는 김씨의 걱정
이 큰 아구 입만하다.
이른 아침 어시장에서는 수십년 동안 아구를 사고 팔면서 아구와 인연을
맺고 사는 여러 삶의 풍경을 통해 아구찜의 맛보다 진한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구찜 가게가 넘쳐나는 골목에서 아구찜을 먹고 아구가 넘쳐나는 어시장
에서 아구 구경을 하게 되면 마산 아구찜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수밖에 없
었던 필연적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구」는 「아귀」가 표준어다. 그러나 마산 「아귀찜」의 경우 오랜
세월 이미 아구찜으로 익숙해져 있어 맛의 향토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차
원에서 여기서는 모두 「아구」로 표현했다.
/권경훈기자 hoon519@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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