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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마음의 연고-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3-07-05 19: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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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 게 힘들다고 했다. 고민을 털어놓는 40대 중반의 H는 무척 힘겨워 보였다. 자식 뒷바라지, 부모 부양, 직장생활,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좀 키워놓으면 편할 줄 알았던 자식은 클수록 말썽이다. 회사에선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와 발끈하는 후배 사이에서 늘 종종거린다. 내 노후도 막막한데 치매 걸린 부모는 더 막막하다. 친구를 만나도 이유 없이 쪼그라든다. 어딜 가나 꼰대 취급. 마음 둘 곳이 없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책 ‘당신이 옳다’에서 말한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라고. 이 과정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것만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단다.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만 안 해도 공감의 절반이 시작된다고 했다. 어설픈 위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별일 없이 산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이주란의 소설집 ‘별일은 없고요?’에는 퇴사, 이별, 죽음 같은 ‘별일’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차분한 문장들이 “넌 별일 없니?”라고 조용히 묻는 것 같다. 별 뜻 없이 건넨 담담한 인사가 오히려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호들갑스럽지 않은 문장 속에서 ‘무자비한 따뜻함’을, 별일을 별것 아닌 듯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다음이 있다는 마음’을 읽는다. 별일이 있어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말 못 할 상처는 쉽게 짓무르고 덧난다. 마음에 바르는 ‘치유의 연고’는 공감에서 시작된다. 바른말은 폭력이 될 수 있다. 다정하게 묻고, 온 마음을 담아 듣고,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는 걸로 충분하다. “별일 없나요?” “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거예요?” “당신의 감정이 옳아요.” 이건 H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지금 이 순간 ‘심리적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말이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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