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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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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꿈은-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 기사입력 : 2023-02-01 19: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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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나먼 태양계 변방인 해왕성에서 바라보는 푸른별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해왕성은 맑은 비취색이고, 거대한 얼음형 행성이다. 태양계의 끝에 자리한다. 여기서부터 지구 까지는 거리가 좀 멀다.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야 한다. 외행성인 천황성을 거치고, 최다 개수의 위성을 가진 토성을 지나고, 태양계 내에서 가장 덩치가 큰 목성을 지나야 한다. 다시 힘을 내어 지구형 행성이자, 붐비는 지구의 이주지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화성을 지나야,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구에 이른다. 가볼 일도 없지만 아무튼 순서는 이렇다. 거기서는 지구촌 80억 인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먼지보다 작게 보여서다. 해왕성에서는 지구의 높은 산도 보이지 않고, 전쟁도 보이지 않고, 이념도 보이지 않고, 옳고 그름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없는 것을 가지고 갈등하고, 혐오하고, 다투는 소모적 논쟁으로 허송세월 하는지 모른다. 요럴 때는 보이지 않는 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면 좋겠다.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은 북극 지방의 차가운 기압이, 기류 이상으로 동아시아로 남하한 때문만은 아니다. 밥벌이의 버거움과 고단함, 끔찍한 사건들의 발생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했던 공동체 문화의 균열도 일조할 것이다. 2023년, 올 한 해는 ‘경기침체’라는 단어로만은 설명이 부족한 듯, 각종 위험에 대한 지표들이 무성하다. 정부와 기업 가계가 모두 전년에 이어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미국과 유럽, 중국 경제 또한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수출은 저조하고, 투자는 위축되며, 소비는 줄어든다. 대기업 창고는 재고가 많아진다. 삼성전자 창고에는 반도체가 늘어나고, SK하이닉스 창고에도 반도체가 쌓여가고, LG 전자 창고에는 가전제품이 가득하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대한 정부의 긴축 기조는 실물 경제의 위축을 수반한다. 부동산 하락과 기업의 운영자금 부족으로 인한 기업의 파산과 부도가 심상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김앤장,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 화우 등 대형로펌들은 부동산 PF, 기업위기 대응팀, 부실자산 관리팀을 꾸려 시장의 변화에 맞춰 슬슬 몸을 풀고 있다. 장(場)이 선 것이다. 이런 시기에는 기업과 금융기관 간, 기업과 기업 간 사활을 건 분쟁이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는 혹독한 시절을 견디며 버티고 있다.

    가계의 어려움과 힘겨움도 배가 된다. 생필품과 공과금 등 모든 물가는 오르고, 은행 금리도 고공 행진이 이어지나, 월급은 제자리다. 주택 가격은 내리고, 이자 부담은 늘고, 쓸 돈은 줄어든다. 우리나라 3년 치 예산에 육박하는 1800조 가계 부채는 몇 년째 시한폭탄으로, 째깍째깍 폭발 시간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보름달이 둥실 뜨는 날이면 동네를 한 바퀴 걸어본다. 앞산에서 떠오른 달맞이를 하며 그냥 걷는다. 충만함이 동행한다. 달을 보며 두런두런 중얼중얼 비 맞은 중(僧)처럼 걸어간다. 마요(반려견)는 보름달과 초승달을 구분하지 못하는지, 늘 땅을 보고 풀내음을 맡으면서 종종거리며 걷는 모습이 한결같다. 마요는 일관성이 있다. 마요는 생각은 간결하고 행동은 담백하다. 작은 일에도 걱정하고 망상 피우는 나보다 훨씬 낫다.

    세월이 총알이다. 아이가 장년이 되었다. 소싯적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학업은 게을렀고, 딱히 하고 싶고, 특별히 되고 싶은 것도 없는 듯 하다. 부친이 “커서 머가 되겠노? 꿈이 머고?”라는 물음에 “척박한 조국의 풀 한 포기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하고 까불다가 직사게 얻어맞은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그분은 없다.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경제적 안정, 그 너머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꿈은 늘 찾아 나서지만, 늘 잊고 사는 것. 내일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북면 다이소에 가보자. 혹시 꿈을 파는지.

    김흥구(행복한요양병원 공감소통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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