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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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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그리운 희망역-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3-01-04 19: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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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묘년 새해를 맞았지만 지난해를 돌아보니 아련하고 아프다. 긴 터널 속에 갇혀있는 듯한 암울함으로 불안하고 초조했다. 눈이 부시지 않더라도 미명의 빛이라도 그리웠지만 쉬지 않고 달려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가시 덩굴에 할퀴고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는 세월은 영양가도 없을뿐더러 질기기까지 해서 물어뜯자니 이빨이 망가지고 잇몸마저 상했다. 품위 있게 살아가는 삶은 고사하고 견뎌내야 하는 세월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의 바가지로 퍼내 한숨으로 버무려서 허공에 뿌리고 돌아온 날은 모로 돌아누워도 잠들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울부짖다가 지치면 눈을 감고 더러는 정말로 더러는 그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 빛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아내느라 미처 도래하지도 않은 미래의 세월을 무작정 소급해서 탕진한 심정으로 늙어 버렸다.

    민생은 팍팍해서 먼지가 나는데 그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정쟁에만 휘말렸다. 건강한 민주주의의 뱃살을 키우기 위한 정쟁은 아름답지만 불신의 온상에 탐욕의 물을 주며 키워내는 비리는 몸집만 컸지 추악했다. 지키기 위한 법을 만들어놓고 그 법을 만든 사람들이 보란 듯이 허물어대는 현실 앞에 국민은 절망했다. 입만 벌리면 국민이고 진실이지만 정작 국민과 진실은 그들에게 없었다. 부실하고 무능했던 치안은 우리 소중한 청춘을 질식시켜 유가족의 가슴에 묻었다. 귀족노조가 거리를 활보하고 범법자가 버젓이 국민을 대표한답시고 진실을 떠벌리며 지금도 게거품을 물고 있다. 민생법안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예산안을 빌미로 정쟁에 핏대를 올리느라 영끌로 뇌사상태에 빠진 영혼들은 외면했다. 경기가 바닥을 기든 물가가 솟구치고 금리가 펄펄 날아다니든 관심조차 없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벼랑 끝에 섰던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특별자금으로 겨우 숨통을 열었다지만 결과적으로는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니 늘어나는 건 매출이 아니라 빚뿐이었다. 빌려 쓴 빚을 갚기 위해 더 이상 팔 영혼도 없으니 대출로 대출을 막는 일이 지칠 무렵이면 결국 선택의 여지도 없이 잡을 수밖에 없는 것은 미리 내밀고 있는 파산의 손뿐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만은 밝지 않다. 이 모퉁이를 돌고 저 비탈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면 미명이라도 비치는 곳에 당도할까.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경험했으니 이제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그곳에서는 크게 욕심내지 않고 거창하게 떠벌리지도 않겠다. 그저 살아가는데 지쳐 생을 통째로 반납하고 싶은 마음만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의 보호 아래 존중받는 국민으로 다치지나 않았으면 좋겠고 설령 다치더라도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상처를 매만져만 줘도 눈물겨워 아름답게 아프겠다. 법치주의 나라답게 법을 지키고 잘못한 게 있으면 떳떳하게 밝히고 사과하고 죗값을 달게 받으며 제발 책임지는 자세를 취할 수는 없을까. 용서할 줄 알고 아픈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들이 늘어나야겠다.

    계묘년 새해에는 봉한 입도 풀고 그 풀린 입으로는 절대로 없는 얘기는 만들어하지 말아야겠다. 네 탓이기 전에 내 탓으로 돌리고 가슴을 치자. 그러기 위해 아무리 급해도 연초부터 서둘러해야 할 대청소는 기필코 하고 가야겠다. 너절한 것들을 치우고 삐뚤어진 것들을 바로잡는 것이다. 가속 페달을 밟아서라도 이 지긋지긋한 터널을 얼른 빠져나가자. 터널 속에서는 개도 짖지 않으니 지난해를 뒤로하고 기적을 울리며 계묘년의 기차는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한다. 계묘년 토끼해, 이 열차가 달려가 멈춰서야 할 역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운 희망의 종착역이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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