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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새해에는 새 정신보다 제정신으로- 김일태(시인)

  • 기사입력 : 2022-12-28 19: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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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틀만 지나면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다.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한해를 맞이하자고 서로 덕담을 나누고 또 제각기 내년 한 해 이루고 싶은 새해 소망을 고민할 때이다. 그러나 어쩌랴, 지난 한 해와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워질 수 없는 현실을.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 단 하루도 쉴 틈 없이 쌈박질하는 틈새에서 휘둘리며 제정신 가지고 살기 힘들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세상의 중요한 관심거리를 권모술수가 덮어버린 탓이다. 국정을 위한 중요한 사안도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었고 모두의 이익이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지어 무자비하게 상대를 공격해대며 나라의 발전동력을 소진시켰다. 사회적 이슈도 민생의 핵심적 과제도 파벌 싸움의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심을 대변해야 하는 정치권에서부터 발원해 사회의 지도층까지 번진 이 집단환상에 가까운 당파적 진영논리, 조현병에 가까운 파시즘에다가 특권과 반칙, 정신착란증에 가까운 위선 쇼와 현란한 말장난이 온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끈 이들은 선량한 국민을 투전판의 싸움닭처럼 우리에 가둬 사생결단하도록 부추겨 놓고 희희낙락거리는 투전꾼들과 다를 바가 다름없었다. 또한 이들은 마치 오래전 독재시절 효율적으로 추종자들을 다스리기 위해 하수인들과 설익은 지식인들을 동원하여 ‘누가 누가 잘하나’식 충성경쟁을 부추기며 ‘분할통치’ 전략을 구사하던 패덕한 군주를 연상시키기에도 충분했다.

    최근 몇 년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고질적 의식이 ‘아니꼬우면 너도 하든가’와 ‘내로남불’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뻔한 잘못까지 남의 핑계를 대고 회피하는 풍조까지 더해지면서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라는 말을 뽑기도 했다.

    이틀만 지나면 새해를 맞겠지만 온 국민을 불쾌감으로 공분하게 만드는 이 조롱의 시대를 또 한 해 힘겹게 건너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두려워 잎 진 겨울나무처럼 세밑이 쓸쓸해진다. 심한 병을 앓고 나면 일상에 쫓겨 잊고 지낸 가치 있는 소소한 것들과 함께 왜곡되어 보이던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할까?

    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는 데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해 덕담에 꼭 따르는 수식어가 ‘새로운 정신’이다. 과연 어떤 정신을 말하는 것일까. 시대적 상황에 잘 적응하며 폐단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일까? 늘 쓰면서도 어렵고 암담하고 여간 낭패스럽지 않다.

    오래전에 맹자는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라 했다.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인간답지 못하게 부끄러운 짓을 하며 살아가는가? 먹이사슬 꼭대기를 점하고 있어 인간이 위대한 게 아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 편한 대로 판단하고 생각이 다르면 우기거나 나만 누리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을 자성해야 한다. 인간 본성을 찾는 일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를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처럼 상처 입은 세상을 지혜와 포용과 용서, 위안을 통해 구원해야 한다. 그 손길은 새 정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제정신이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하찮은 생명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인간은 겸손해지고 착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이 세상의 평화를 구현한다’라고 옛 어른들은 말했다. 추운 겨울이 자연의 순리를 수용하여 아름다운 봄을 예감하게 하듯이 우리 모두 자성을 통해 새로운 정신이 아니라 제정신으로 돌아가는 계묘년 새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김일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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