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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바니타스 정물- 양영석(문화체육부 선임기자)

  • 기사입력 : 2022-07-20 20: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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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고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다. 로마 공화정 시절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개선식을 할 때 같이 탑승한 노예 한 명이 끊임없이 ‘메멘토 모리’라고 속삭였다. 아무리 영광스러운 인간일지라도 신에게는 못미치기 때문에 우쭐대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현세에서의 쾌락, 부귀, 명예 등은 모두 부질없는 것(Vanitas)이라는 허무주의적인 의미로 쓰였다. 이후 중세 말에 흑사병, 종교 전쟁 등 여러 비극적인 경험으로 인하여 ‘바니타스 정물’이라는 정물화의 한 장르가 등장했다.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행했으며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촛불, 꽃 등을 소재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빈센트 반 고흐도 바니타스 정물을 그렸다. 그는 계속된 실패와 좌절에서 벗어나고자 1888년 프랑스 아를에 집을 마련해 화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안면 있던 화가들에게 초대의 편지를 보냈지만 응한 것은 고갱뿐이었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꾸미려 화병에 해바라기가 꽂힌 정물 4점을 그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거는 대판 싸우는 바람에 두 달 만에 파경으로 끝났다. 고갱은 파리로 돌아가고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고흐의 작품 속 해바라기 모습은 다양하다. 노란 꽃잎을 잘 간직한 꽃과 약간 고개를 숙인 꽃, 시들어 꺾인 꽃도 있다. 어떤 것은 겉을 둘러싼 노란 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씨앗만 품고 있는 것도 있다. 인생 덧없음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그림 속엔 또 다른 암시가 있다. 바로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력을 의미하는 씨앗이다. 그래서 해바라기는 바니타스 정신의 완성을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덧없지는 않았다.

    양영석(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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