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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투기- 주재옥(문화체육뉴미디어영상부 기자)

  • 기사입력 : 2021-03-28 2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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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재옥 경제부 기자

    튤립의 계절이다. 우아한 자태를 지닌 튤립엔 의외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17세기 튤립은 유럽 왕가 정원에 심어질 정도로 부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당시 귀족들은 희귀한 모양을 가진 뿌리에 집착했고, 상인의 소문이 더해지면서 일반인도 튤립을 사들였다. 급기야 튤립 알뿌리까지 인정되는 약속어음이 등장했다. 붉은 줄무늬가 있는 ‘황제 튤립’은 집 한 채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거품이 심했다. 튤립은 투기의 시작이었다.

    ▼튤립 광풍은 네덜란드 화풍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업 화가는 튤립이 그려진 그림으로 부유층의 사치를 부추겼다. 반면 해골과 꽃을 소재로 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통해 교훈을 주고자 한 화가도 있었다. 라틴어로 ‘허무’란 뜻을 가진 바니타스는 재물의 덧없음, 시간의 무상함,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의미한다. 삶의 유한함을 직시하고, 주어진 생을 가치 있게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튤립 거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격이 붕괴한 이유는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한 귀족이 튤립 알뿌리를 주문했는데, 요리사가 양파인 줄 알고 식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귀족은 요리사를 소송했고, 법원은 “튤립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튤립이 매물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경제 대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 대공황을 겪게 된다. 허황된 욕심의 끝은 파국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사건이 튤립 투기를 재현하고 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불평등과 불공정에 정점을 찍었다’는 성토가 분출하고 있다. ‘LH는 벼락부자, 청년은 벼락거지’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문제는 법규가 허술한 탓에 투기 의혹이 규명되어도 처벌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을 채우는 공직자를 원치 않는다. 탐욕보다 큰 비극은 없다.

    주재옥(문화체육뉴미디어영상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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