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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1월 2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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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근자감- 김희진(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20-08-26 20: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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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에 생긴 일이다. 미국 피츠버그의 한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흔히 은행털이범이라면 자신의 신분이 노출돼 잡히게 될까 두려워 두건을 뒤집어 쓰거나 마스크를 하는 등 변장을 하기 마련인데 이 강도는 좀 남달랐다. 복면을 쓰지 않고 얼굴을 훤히 드러낸 채 범행을 저지른 후 심지어 감시카메라를 향해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범행 후 감시카메라에 찍힌 그의 얼굴은 방송을 통해 전국에 퍼졌고, 불과 얼마 뒤 경찰은 범인을 붙잡았다.

    ▼강도는 얼굴에 레몬주스를 발랐기 때문에 당연히 안 잡힐 줄 알았다고 경찰에 답했다. 레몬주스로 종이에 글씨를 쓰면 투명해서 안 보이지만 열을 쪼이면 글씨가 나타난다는 어릴 적 지식(?)을 살려 레몬주스를 바르면 얼굴이 투명해져서 사람들이 자신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는 거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근거 없는 자신감(근자감)과 꼭 맞는 상황이다.

    ▼근자감을 설명하는 심리용어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가 있다. 코넬대 더닝 교수와 제자 크루거는 사람들의 근자감이 무지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다. 시험을 친 후 본인 점수를 예상해 보라고 했더니 성적 하위 25% 학생은 자신이 상위 40% 이상일 거라 했고, 성적 상위 25% 학생은 자신이 상위 30% 이하일 거라 답했다. 이에 더닝 교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며 제 능력이 부족해 생긴 문제를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변에서 근자감 충만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TV에 나와 훈수를 두는 나름 정치평론가나 구국의 사명을 띈 것 같은 집회 참가자, ‘라떼는 말이야~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상사, ‘내가 난데~’하는 본인에 해당하는 말일 수도 있다. 다행한 것은 근자감에 빠진 사람의 실체 없는 능력을 공부와 노력을 통해 실제로 바꾸면 용감한 무식자 꼬리표를 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자는 말했다. 진정한 앎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김희진(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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