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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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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최진석의 老莊的(노장적) 생각

구경꾼에 머물 것인가, 해방의 길을 갈 것인가

  • 기사입력 : 2017-09-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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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필용 作 ‘통합’


    세계를 높은 시야로 넓게 보는 큰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 시대의 병을 아파하며, 그 병을 치료하는 데에 헌신한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시대의 병을 치료하는 일이 일치한다. 자신이 독립적으로 발견했지만, 그 병은 시대의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점에서 공적 (公的)이다. 또 온 몸을 바쳐 치료에 헌신하며 윤리 행위자로 등극한다. 그래서 큰 사람은 공적이고 윤리적 인격으로 우뚝 선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도자다.

    문제는 시대의 병을 자신이 고수하는 생각의 틀에 맞춰 해석하고 치료하려 덤비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은 시야가 일단 높고 넓지는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높은 수준의 지식도 필요하고, 개방적이며 융통성 있는 심리상태도 필요하다. 게다가 병은 대부분 앓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일 가능성이 크다. 굳고 철지난 마음으로 새롭게 등장한 병을 다루게 되면, 병은 치료되지 못하고 악화되거나 더 수선스러워질 수 있다. ‘텅 빈 마음’으로 시선을 새롭게 하여 새로 등장한 병을 대면하고, 그것을 치료하려 거기에 자신을 전부 던진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다. 그런 사람을 가진 나라는 흥하고, 그러지 못하면 어려움에 처한다.

    일본은 미국에 강제 개항을 당하면서 충격과 어려움에 직면하고도 바로 수준 높은 차원에서 전열을 정비해 근대의 흥성기를 구가한다. 이런 흥성으로 형성된 힘을 가지고 우리나라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가했지만, 어쨌든 일본은 나름대로 탄탄하고 모범적인 국가로 성장했다.

    물질문명의 발전은 정신문명의 발전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신문명이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이행되려면 여기에는 정신적 통합으로 빚어진 일치된 단결이나 공동의 선을 향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사회통합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시대의 병을 앓기 시작하자 바로 일군의 지식인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치료에 돌입한다. 정점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있었다. 요시다 쇼인이 일본의 근대를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다른 문화권과 다른 일본 만의 정신으로 간주되던 것을 다시 살려내어 ‘대화혼(大和魂)’이라는 일본 통합의 정신을 제시했다.

    이와 필적할 인물이 중국에는 누가 있을까? 근대 격동기에 중국인들을 통합할 ‘정신’을 형성한 사람은 누굴까? 나는 루쉰(魯迅)이라고 본다. 루쉰은 원래 의사가 돼 중국인들의 육체적인 병을 고쳐주려고 하다가 과거에 갇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정신을 먼저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후 바로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문필가, 사상가,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다.

    혁명은 외부와의 투쟁으로만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부의 투쟁이 더 격렬하다. 혁명의 분열상은 혁명의 진행에 매우 치명적이지만 언제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루쉰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이 이를 증명한다. 1936년 10월 22일에 치러진 그의 장례식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민중장(民衆葬)이었고 또 분열을 일삼던 문단도 이날만큼은 일치된 모습으로 모든 문학잡지가 일제히 추도호를 발행했다. 통합의 아름다운 행렬이다. 이때 루쉰의 시신은 ‘민족혼(民族魂)’이라 쓰인 하얀 천에 감싸졌다. 중국 혁명의 여정에 루쉰이 이뤄낸 정신적 통합과 방향 제시는 핵심적이며 또 결정적이다.

    요시다 쇼인이나 루쉰이 새로운 정신으로 나라를 통합해 미래로 끌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국가가 가져야 할 수준의 어젠다를 가졌기 때문이다. 정권이나 정치 집단 차원의 어젠다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어젠다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 정권에서 저 정권으로 이동하자고 말한 것도 아니고, 이 세력을 저 세력으로 교체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이런 나라를 저런 나라로 만들자고 하며 미래 지향적인 어젠다를 제시해 통합을 이뤘다. 높고 넓은 시선을 사용한 결과다.

    국가 수준에서의 어젠다를 제시하고, 그것을 삶 전체를 통해 추진할 수 있었던 힘은 젊은 시절부터 보인다.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가? 바로 그들의 시선 자체가 시작부터 공적이고 윤리적이기 때문이다. 루쉰만 보더라도 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동포들의 병든 육체를 고쳐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심리적인 배경을 따지면 그가 의학을 선택한 것이 부친이 병을 앓다 세상을 뜬 것과도 관계가 없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높고 큰 틀에서 새로운 중국을 꿈꿨던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그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성공을 관심 있게 보면서 그 성공의 출발선이 현대 의학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때 의학은 단순하게 특정한 한 분야의 학문이 아니었다. 국가 개혁이 시작되는 지식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루쉰은 의학을 자신이 전공해야 할 학문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극적인 전환은 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루쉰이 듣던 과목 가운데 세균학이 있었다. 환등기를 사용해 세균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보면서 수업을 했는데, 시간이 남을 때는 시사성이 있는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내용이란 것이 대부분은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다양한 동정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속에서는 러시아군의 밀정 노릇을 하다 붙잡힌 중국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그 처참한 처형 장면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중국인들이었고, 게다가 동포가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빙 둘러싸서 구경하는 것도 모자라 그들 가운데 일부는 박수치고 환호까지 했다. 이 장면을 본 루쉰은 비통한 충격에 휩싸인다.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직접 루쉰의 말을 들어보자. “그때 이후로 나는 의학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우매하고 연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온전하고 건장하다 하더라도 아무 의미 없는 시위의 구경꾼밖에 될 수 없고, 병사자가 아무리 많다 해도 이를 불행이라 여길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정신을 뜯어고치는 것이고, 정신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학예술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문학예술운동을 제창하게 된 것이다.”(『喊(납함)』‘自序’)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로 루쉰은 스스로의 인생행로를 전혀 다른 각도로 바꾼다.

    루쉰도 말한다. 우매하고 연약한 국민은 바로 구경꾼으로 전락한다. 자기 자신의 생명이 좌우되는 일에서마저도 구경꾼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구경꾼들은 비판하고 분석하는 데에 재능을 발휘한다. 그리고 분석 비판 이후에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진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인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갖기도 한다. 그 우월감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에 매우 효용적이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은 자신에 옳은 사람으로 남는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웃음을 사지만, 자신은 알지 못하고 또 알더라도 인정을 하지 않는다. 루쉰의 고뇌는 늙고 병든 중국이 이런 구경꾼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구경꾼이면서 또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옳은 사람으로 조작해버리는 우매한 사람을 ‘아Q’(阿Q)라 이름 지었다. 루쉰이 보기에 당시 중국인들은 모두 ‘아Q’들이었다.

    ‘아Q정전(阿Q正傳)’의 앞부분에 나오는 대목이다. “건달들은 그것도 모자라서 그저 그를 놀려대며 마침내는 손찌검까지 했다. 아Q는 형식상으로는 졌다. 건달들은 그의 노란 변발을 휘어잡고 담벼락에 소리가 나도록 네댓 번 머리를 짓찧었다. 놈들은 그제야 이겼노라고 흡족해하며 가버렸다. 아Q는 잠시 멍하니 서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놈에게 얻어맞은 셈이야. 요즘 세상은 정말 말이 아니야.’ 그리고는 흡족해하며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아Q는 건달들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아들놈에게 얻어맞은 꼴로 바꿔버린다. 이것을 ‘정신승리법’이라고도 하는데, 아비를 때린 아들이 나쁜 놈이기 때문에 나쁜 아들의 역할을 한 건달들이 나쁜 놈들이므로 자신은 오히려 선을 지탱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긴 거나 다름없는 것으로 해석해버린다. 현실에서의 패배를 정신적인 승리로 바꿔서 자위하는 비굴한 모습이다. 루쉰은 아Q를 통해 외세에 늘 시달리면서도 외세를 멸시하고 게다가 스스로 조작한 우월감이나 안정감 속에 빠져 있는 그의 조국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Q’들은 펼쳐지는 판을 자신의 방식대로 혹은 자신이 해석하고 싶은 대로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기대에 따라서 해석한다. 심리적 기대를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가한 루쉰의 가슴은 쓰리고 아팠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지금 우리에게 ‘아Q’는 전혀 없을까?

    구경꾼들은 대개 구체적인 현실보다는 가지고 있는 고정된 생각에 더 집착한다. 현실은 두텁고 유동적이지만, 고정된 생각은 얇고 고정적이다. 얇고 고정적인 생각으로 현실을 지배하려다 보면, 항상 현실에는 삐져나오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여분의 현실은 ‘정해진 생각’의 제어 능력을 벗어난다. 여기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정당화, 정신승리법 밖에 없다. ‘아Q’가 정신승리법에 빠져 있는 이유다. 그런데 혹시 지금 우리는 정신승리법으로 버티는 ‘아Q’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을까?

    요시다 쇼인이나 루쉰은 모두 ‘아Q’로 살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사람들이었다. ‘아Q’들을 끌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봉우리를 넘으려고 거친 길을 죽어라 걸었던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자신도 해방되고, 민중들도 해방시켰다. 루쉰이 20여년 만에 정들고 추억에 젖은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향 사람들은 여전히 구태의연하고 우매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희망을 걸고 묵묵히 혁명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이렇게 심정을 토로한다.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땅위에 있는 길과 같다. 사실 땅에는 본래부터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길이 생겨났다.”(『故鄕』)

    “길은 사람들이 다녀서 생긴 것이다”(『장자』‘제물론’)는 장자의 말이 루쉰에게까지 닿아있다. 넓고 큰 시야를 가지고, 먼저 발을 내디딜 것인가, 아니면 분석과 비판을 일삼으며 구경만 할 것인가. 뜻이 있다면, 나라를 보라. 그리고 구경꾼 무리에서 빠져 나와 갇히고 고정된 마음이 아니라 미래로 활짝 열린 마음으로 두려운 첫발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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