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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삼성과 엘리엇, 개미 투자자- 이호진 (밸류아이투자자문㈜ 대표·경영학 박사)

  • 기사입력 : 2015-07-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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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주 여러분께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여러분의 주식 1주가 매우 소중합니다. 주주 여러분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는 최근 삼성물산이 합병 결정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TV로 방영한 공개 호소문의 일부이다. 주식시장을 나름 상당 기간 관찰해 온 필자로서는 느낌이 새롭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개미로 일컬어지던 소액주주가 회사로부터(그것도 국내 굴지의 기업집단 삼성으로부터) 이토록 간절한 구애를 받으며 주주의 지위를 인정받은 적이 과연 있었던가? 또 기업들은 일찍이 소액주주들의 도움이 이토록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삼성그룹의 핵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카드’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국내에선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양사의 합병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한 결정’이라는 삼성의 발표를 믿고, 부수적인 효과로 ‘2세로의 삼성그룹 전반 경영권의 승계’라는 사실은 눈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투자자가 ‘엘리엇’이었다. 이름의 이미지와는 달리, 엘리엇은 국제적으로 기업의 약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챙기는 경력으로 유명한 미국의 거대 헤지펀드이다. 그 헤지펀드가 삼성의 행보에 딴지를 건 것이고, 삼성은 오래된 계획(사실 이번 이재용씨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는 1996년 에버랜드의 7700원짜리 전환사채 매수에서부터 시작됐다)이 거의 최종 단계에서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국민에게 호소한 것이다. 우리 국민은 또다시 애국심을 발휘했다. 먼저 법원은 엘리엇의 요구를 막았고, 국민연금도 국민을 대신해 찬성해 줬으며 국내 기관 투자자들도 삼성의 편에 서 줬다.

    결국 지난주 금요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초기의 분위기와 달리 역전에 가까운 드라마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건은 성사됐다. 이 결과는 외국자본에 대항하고자 한 우리 국민의 애국적 정서에 힘입은 바가 컸음을 삼성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주총이 끝나고서부터였다. 합병 결정 직후, 삼성물산의 주가는 곧바로 하락해 당일 10% 이상 떨어졌고, 이날 하루에만 시가 1조원에 가까운 시장가치가 사라지게 됐다. 이는 당연히 그만큼의 주주가치가 하락한 것이고, 많은 가입자가 있는 금융상품 및 국민의 자산인 국민연금의 자산가치 등이 하락한 것이다. 국민들의 성원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을 밀어줬더니 해당 기업은 투자자들에게 단 하루에 약 1조원의 자산손실을 입힌 셈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됐다. 그 와중에 일부의 계산에 의하면 삼성 오너 일가는 이번 딜로 인해 수조원의 자산증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어쩌면 주총 전에 엘리엇이 주장하던 바가 현실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또 다른 기업에 유사한 상황이 올 경우 이번과 같은 범사회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이제 간절하게 국민에게 호소했던 삼성이 답할 차례다. 그간 해당 기업의 제품을 소비해주며 기업의 성장에 함께해 준 국민들과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서의 자부심과 위상을 지키도록 밀어준 사회와 적당 규모의 배당금으로 유지시킨 소액주주들에게, 기업이 해줄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깊이 고민하고 명확히 하여 앞으로의 실천 로드맵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기업의 소유와 경영, 경영권의 보호와 그 한계 등에 관한 제도적 연구와 보완의 필요성이라는 과제를 던져 줬다.

    이호진 (밸류아이투자자문㈜ 대표·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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