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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대봉산과 비봉산- 강진태(사회2부 국장)

  • 기사입력 : 2015-06-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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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138.5m의 그리 높지 않은 정겨운 모습으로, 상봉동을 비롯해 봉래동, 옥봉동 등의 시가지를 품고 있으면서 진주의 대표적인 전설까지 안고 있는 진산인 비봉산. 시가지와 맞닿아 있는 관계로 정상을 올라가 보지 않은 시민이 없을 정도로 친숙하기도 한 비봉(飛鳳)산은 옛 이름이 대봉(大鳳)산이었다.

    고려시대부터 고관대작이 많았던 진양 강씨 문중이 대대로 세도를 누리는 것이 영상서를 지낸 정절공 강구만(931∼975)의 집(봉곡촌) 뒤에 봉황의 형상을 하고 있던 큰 바위, 즉 봉바위 때문이었는데, 조정 권신들의 시기를 받아 임금이 사람을 시켜 몰래 봉바위를 부쉈다. 그 후 고려 인종(1123) 때 상서 강홍 일당이 불의의 앙심을 품고 있다는 권신들의 말에 깜짝 놀란 임금은 강씨의 향토 진주의 명소인 대봉산을 ‘봉을 날려 보낸다는 뜻’으로 비봉산(飛鳳山)으로 고치고, 봉지(봉 연못)의 명칭을 ‘봉을 가마솥에 삶는다는 뜻’으로 부지(가마못)라 고쳐 인물 맥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상봉동 911-11에 있는 봉란대(鳳卵臺)는 어느 도승이 지나가다 강씨 선대 사적의 사연을 듣고 ‘날아간 봉황새는 알자리가 있으면 돌아오는 법이니 알자리를 만들라’고 권해 도승의 말대로 봉곡촌 중앙 ‘동산’에 봉황새의 알자리를 만들었다.

    산남 지방에 강·하씨 인물이 많이 나옴을 싫어한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시켜 진주의 지리를 살펴보니 비봉산이 과연 명당 명승의 자리이며, 비봉산의 지맥이 대룡골의 황새터와 연결돼 있음에 놀라 지금의 비봉산과 봉원초등학교 사이의 가마못이 있는 등을 끊어서 한시름 놓았다고 하는 진주의 지맥설도 전해진다.

    최근 각계 각층의 시민사회에서 비봉산이 옛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크게 서쪽 공원녹지산지와 동쪽 일반산지, 보전녹지지역으로 나눠지는 비봉산에는 140여개에 달하는 무허가 건축물, 텃밭을 관리하는 주택 등으로 경작지인지 산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특히 일부 등산로가 콘크리트로 포장돼 차량이 자유롭게 통행하면서 식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 때문에 제 모습을 찾는 복원계획에도 이를 매입할 엄청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비봉산 생태계 복원은 더 이상 미루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민사회 최대의 숙원으로 대두되고 있다. 비봉산과 선학산을 잇는 봉황교가 개통됐지만, 생태계가 파괴된 비봉산으로 인해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따라 진주시가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하루빨리 비봉산이 제 모습을 찾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강진태 (사회2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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