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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경수 마산 월당민속박물관 대표

“고미술품은 함께 보고 느껴야 가치가 있는 겁니다”

  • 기사입력 : 2014-06-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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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 월당민속박물관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민속박물관에서 가마에 타고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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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 대표가 민속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마산·창원에서 골동품 좀 만진다 하는 사람 중 ‘민속당’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집 사장이 좋은 물건을 취급하려는 의욕이 남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덕택에 지난 30여 년간 민속당을 사랑방으로 삼아 수많은 고미술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활발히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민속당이 깜쪽같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그 좋은 물건들을 다 싸들고 어디로 갔을까’ 하고.

    ◆1981년 민속당에서부터

    민속당, 그 가게의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 차라도 한잔 얻어마시다 보면 실내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진귀한 물건들에 눈이 휘둥그레지기 마련이었다.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하는 무지막지한 시간계산법(이를테면 200년, 500년이 넘는다는)을 듣고 있자면 여기가 대체 어딘지, 저들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싶기도 했다.

    1981년부터 마산에서 민속당을 운영해온 김경수(58) 대표. 김 대표는 아버지 김홍선(82) 한국고미술협회 경남지회 초대회장의 업을 물려받아 30여 년간 고미술품 분야에 몸담아 왔다.

    ◆직관적 안목을 갖기까지

    김 대표는 문화재청이나 법원 등의 고미술품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복, 이상문 같은 감정사들이 출연 중인 감정 프로그램 위원 물망에 오르내릴 정도로 눈썰미도 맵차다.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진품을 알아보느냐”다. 그의 대답은 “설명이 안 된다”다. 그가 물건을 알아보는 방법이란 흔한 말로 ‘직관, 느낌, 감, 촉, 필(feel)’이라는 표현이 가능하겠다. 그가 안목을 기른 과정 자체가 ‘해석·논리·체계’와는 거리가 먼 때문.

    “아버님이 미군부대에서 미군 장교들 통역 일을 보셨어요. 그들은 본토로 돌아갈 때 현지 미술품을 가져가길 원했고, 아버님이 중간에서 그 거래를 성사시켜 주는 역할을 하셨죠. 그러다 직접 고미술품을 취급하셨습니다. 당시 농 종류는 한 벌에 1만~2만원에 거래됐는데, 가장 인기가 좋았죠. 학교 다녀와서 미군 장교가 골라놓은 물건을 광내고 포장해서 선적하는 게 제 일이었죠.”

    아버지 김홍선씨가 진해에서 운영한 ‘금강고물상’은 도내 1호 고미술품 거래업소였다. “그땐 노다지였죠. 귀중한 물건들을 많이 봤고, 일일이 어루만지면서 온몸으로 체화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논리적 설명이 가능하겠어요.”

    ◆월당민속박물관 건립에 품은 뜻

    김 대표가 이 일을 하면서 늘 안타까웠던 것은 ‘좋은 물건은 중앙으로 몰리는’ 지역 착취적인 거래 행태였다. 서울 인사동을 기반으로 한 거대 자본은 지역의 고미술품들을 싼값에 독식했다. 도내의 좋은 물건도 상당수 사라졌다.

    “7년 전쯤 ‘물건’이 하나 입수됐었죠. 200년 정도 된 태극무늬가 새겨진 목기 책장이었는데, 한 컬렉터에게 6000만원을 주고 팔았어요. 귀중하게 다루라고 신신당부하고서. 그런데 이 컬렉터가 이걸 인사동에 1억2000만원에 팔았다는 거예요. 인사동 업자는 다시 제3자에게 자그마치 6억원에 팔았고요. 뼈가 아팠죠. 보물이나 국보급이나 돼야 소재 파악이 되지, 그 외는 팔리고 나면 파악이 어렵습니다. 어쩌겠어요.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죠.”

    개중엔 박물관에 매입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박물관에 들어가 전시가 되면 다행이지만, 곧장 수장고로 들어가버리는 것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토기를 볼까요. 일단 국내 출토량은 넘치도록 많은데 국외 반출은 안 돼요. 박물관도 토기는 기증만 받죠. 몇 천년 된 물건들이 방치되는 겁니다.”

    그는 이 문제를 업자와 컬렉터들의 ‘자부심’ 문제로 봤다. “고미술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물건을 끈기있게 보유할 사람들이 필요해요.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타인과 함께 감상하는 기쁨도 아는 사람요.”

    그의 철학이 집대성된 장소가 바로 ‘월당민속박물관’이다. 그는 고미술품을 누구나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 조성을 꿈꿨고, 실현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건물 한 채를 인수, 1층 목기류, 2층 민속품, 3층에 고서화를 전시하고 4층은 수장고로 꾸몄다. 전시 물품들은 가야시대 토기부터 해방 후 신문물까지, 1만 점에 달한다.

    ◆목오리, 찬합, 자물쇠

    김 대표가 가장 많이 수집한 품목은 목(木)오리와 찬합, 자물쇠다. 당대에는 생활에 쓰이던 잡기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들이다. 200여 개에 달하는 목오리는 혼례용품으로, 조선팔도 각 지방에 따라 모양과 색이 다르다. 아버지 김홍선씨가 특히 좋아해 선대부터 모아왔다. 자물쇠는 반닫이와 궤짝에 채우던 무쇠 자물쇠, 뒤주나 함에 채우던 놋쇠 자물쇠, 농에 채우던 백동(白銅) 자물쇠 등 300점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지역의 좋은 ‘물건’을 알려달라 했더니 ‘경상도 반닫이’를 꼽는다. “밀양·양산·김해 반닫이를 3대 반닫이로 칩니다. 재질이 유독 두껍고 탄탄하죠. 문양이 들어간 쇠장식도 타 지역에 비해 상당히 강합니다. 수량도 적고. 그러니 더 가치가 있죠.”

    ◆고미술품, 부끄러운 자화상

    김 대표는 “우리나라 고미술품 가치를 떨어뜨리는 건 우리 자신”이라고 꼬집는다. 고미술품이 소위 ‘잘나가던 때’는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 대개가 진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 중국, 북한에서 들어온 정체불명의 가품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혼탁해졌다.

    이렇게 밀반입된 고미술품은 눈이 밝지 못한 사람들에게 팔려나가고, 뒤늦게 진상을 파악한 구매자에 의해 법적 다툼까지 가는 경우도 많다.

    도내 사정도 밝지는 않다. 문화재청 고미술품 취급자격을 가진 사람은 도내에 50여명. 하지만 무허가 업자들은 10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 15곳 정도로 성행하던 마산·창원지역 골동품 가게는 6곳으로 대폭 줄었다. 젊은피 수혈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유의 미감을 간직한 고미술품을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처럼 사고파는 시대가 올까 염려스럽습니다.” 민속박물관 운영도 순전히 사비로, 판매가 아닌 전시에 치중하다 보니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지역사회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오셔서 직접 만지고 감상해보세요.”

    월당민속박물관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233-6에 있으며, 언제든,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 ☏ 242-5253.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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