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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47) 연출가·연극배우 천영훈

감동과 지역색… ‘천영훈표 연극’에서 빠지면 안되는 두 가지

  • 기사입력 : 2013-08-0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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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영훈 씨가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극단 미소 공연장 객석에 앉아 연극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웃고 있는 천영훈 씨 뒤로 한 지역작가의 그림 속 모델로 출연했던 그가 보인다./성승건 기자/
    천영훈 씨의 대표작은 ‘나락모티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2008년 ‘오데로 가꼬?’(사진)로 제목을 바꿔 재공연됐다.


    ‘극장은 신전이요 성소다.’
    그의 사무실 책상 옆 액자에 쓰인 글귀다.
    오십 인생의 절반을 연극에 헌신하며 살아온 남자의 책상이다.

    스무 살, “그냥, 연극이 내 운명인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
    서른 살,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어 보겠다”며 인생을 걸었다.
    마흔 살, “지역의 연극과 후배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이제 오십이다.

    지금까지 그가 일군 연극 인생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창원시 명서동 도파니아트홀.
    거기서 ‘지역 연극인’ 천영훈을 만났다.


    ▲극단미소, 그리고 천영훈

    그의 연극 인생은 ‘극단미소’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89년 6월, 스물아홉의 그는 ‘제대로 된 연극을 만들어 보겠다’는 젊은 혈기로 극단을 직접 만들었다.

    명칭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웃음은 잃지 말자’는 취지로 ‘미소’로 지었다.

    “선배를 따라 마산에서 ‘터전연극 전문 소극장’을 만들고, 연극 일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무대를 만드는 게 좋아서 열심히 했는데, 자꾸 힘들고 마음에 차지 않더라고요. 결국엔 싸우고 나온 거죠.(웃음)”

    창단멤버는 4명, 여동생에게 빌린 50만 원으로 시작한 가난한 극단이었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24년, 그는 극단의 대표이자 배우이자 연출가로 치열하고 끈기 있게 극단을 이끌어 왔다.

    물론 아직도 ‘부자’ 극단은 아니지만, 더부살이로 시작한 살림살이가 소극장과 사무실까지 생길 정도로 커졌고, 전속 단원도 6명이나 된다. 경남연극제 금상, 전국향토연극제 금상 등 잇따른 수상으로 실력도 인정받았다. 스스로도 꽤 괜찮은 성적이라고 평한다. 그리고 지난 2010년 6월, 그는 대표직을 후배에게 넘겼다.

    “후배들을 위해 닦아 온 터전이었고, 이제 자기들끼리도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후배들 소주나 한잔 사주면서 도와주면 되는 거지요.”



    ▲창원 사람들의 창원 이야기 ‘나락모티 사람들’

    연출가 천영훈의 대표작은 자타공인 ‘나락모티 사람들(오데로 가꼬?)’이다.

    2003년 극단미소가 ‘나락모티 사람들’로 초연한 후, 2008년 ‘오데로 가꼬?’로 제목을 바꿔 재공연한 작품이다.

    제22회 경상남도 연극제 우수상, 제26회 경상남도 연극제 금상, 제26회 경상남도 연극제 관객이 선정한 최우수작품상, 제5회 전국향토연극제 금상, 제18회 향기로운 시민불교문화상 등 다수의 상도 안겨줬다.

    연극은 천 씨의 고향인 창원의 197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제 고향은 창원 웅남입니다. 하천과 갈대밭, 염전이 있었고, 어린 시절 추억이 있던 곳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공단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사라져 버렸어요. 제 고향 사람들은 고향이 없어요. 쓸쓸하죠.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작품입니다.”

    심태범의 작품 ‘부산 을숙도 이야기’를 일부 빌려와 윤색을 했지만, 사실을 배경으로 했기에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현실감 있고 감칠맛나게 그려냈고, 실제 당사자 격인 창원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동네 어르신들을 초청했는데 펑펑 우시더라고요. 보람 있었죠. 그리고 연극을 통해서 자연은 그대로 놔두면 더 풍요로울 수 있는데, 이걸 왜 부수는지 그 안타까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또 자연과 더불어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그는 이 작품으로 주인공 강노인을 열연, 제22회 경상남도연극제 연기대상도 수상했다.



    ▲연극은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가 만든 작품은 수십 편에 이른다.

    1987년 터전연극 소극장에서의 ‘결혼’을 시작으로, 극단미소 첫 작품 ‘돼지들의 산책’ 그리고 ‘이혼파티’, ‘콜렉터’, ‘장똘뱅이’, ‘파우스트가 쓴 실패작’, ‘색시공’, ‘서툰 사람들’, ‘나락모티 사람들’, ‘흉가에 볕들어라’, ‘돼지사냥’, ‘아비’, ‘가시고기’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작품의 장르도 색깔도 다양한 작품들이지만 그의 모든 작품에는 ‘감동’이라는 공통 코드가 있다.

    “좋은 연극이란 감동이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보는 이유가 슬프거나 기쁘거나 감정적으로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실험이나 민중, 예술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감동이 빠진 연극은 갑갑하더라고요.”

    이러한 그의 작품론은 그의 연출방식에서도 통한다. 그에게는 연극은 기술보다는 마음이 우선이다.

    “연극은 무대라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출할 때도 배우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배우가 재미가 없고 이상하면 보는 관객도 재미가 없거든요.”

    마침 사무실에 들른 극단미소의 배우 장종도 씨도 “천영훈의 연출 스타일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방목(?)하는 것”이라며 한마디 거든다.



    ▲시를 좇았지만, 연극이 왔다

    이쯤 되면 그가 어떻게 연극을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본래 시인을 꿈꿨던 문학청년이었다고 했다.

    “집안 형편으로 적성에 맞지 않던 공고로 진학하면서 삶에 흥미를 잃고 살았는데, 학보사 친구들이 저한테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어요. 근데 제 시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괜찮았던 거죠. 자신감도 생기고, 재미도 있더라고요. 대학 재수학원에서도 앞장서서 문학동아리를 만들 만큼 빠졌죠. 그런데 당시 문학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연극을 했던 거예요. 선생님을 따라 극단을 드나들면서 연극에도 발을 딛게 된 거죠.”

    그때만 해도 연극이 그의 전부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연극은 자연스럽게, 또 우연히 그의 삶에 자꾸 끼어들었다.

    “대학에 진학했는데 극단에 드나들다가 제적을 당했고, 군대 갔다가 돌아와서 정신 차리고 취직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소극장 만든다는 선배를 따라나서면서 연극으로 또다시 들어서게 된 거죠. 시도 계속 썼지요. 이선관 시인에게 매일 습작시를 줬는데, 반응이 없어 다 찢어 버렸어요.(웃음) 중간에 진지하게 취직도 했는데 자꾸 일이 틀어지면서 결국 그만뒀지요.”

    무엇보다 연극을 할 때가 마음이 더 편했던 그는 결국 “내 길이 연극인가 보다”라며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나는 지역 연극인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역 연극을 한다’고 소개한다.

    창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역 토박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지역에 대한 애착은 그 범위가 더 넓고 특별하다.

    “지역 연극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역에서 지역 예술인, 연극인과 함께 만들어야 지역 연극이지요. 유명한 배우나 스태프 불러서 만든다고 지역 연극이 아닙니다. 물론 서울의 유명한 작품이나 배우에 비해 수준이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함께 실력을 자꾸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지역 연극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지역에서도 연극은 계속 만들어져야 하니깐요.”

    현재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과 경상남도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는 천 씨. 지역 연극 활성화를 위해 나선 일인데, 그 무게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게을러서 그런지 협회장을 맡고는 작품이 잘 안 돼요. 잘 만들고 싶은데 암기도 안 되고, 창작도 안 되고.(웃음) 그래서 빨리 협회장 임기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다시 열정을 피워 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잘될지 걱정입니다.”

    한편 그는 최근 만든 ‘도파니예술단(도파니예술홀)’ 활성화에도 정성이다. ‘다양한 장르의 지역 예술인들이 모여서 좋은 일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도파니예술단은 현재 재능기부 콘서트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도파니예술단의 활동이 지역 연극을 비롯해 지역 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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