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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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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느림 … 악양으로의 초대- 정기홍(사회2부 국장)

  • 기사입력 : 2013-08-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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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통 하나만을 챙겨서 한나절을 걸었다. 당신이 저곳서 걸어오면 중간에 멈춰 서서 한참 살아가는 얘기를 서로 나누다 오른손을 들어 흔들며 헤어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과 헤어질 때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당부하겠다. “자연의 보폭으로 걸어 돌아가세요.”>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 ‘느림보 마음’에 담겨 있는 한 구절이다.

    우리는 지난 60여 년 동안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왔다.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삶을 살아왔고, 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빨리 빨리’는 몸에 밴 삶의 방식이었고, 성공의 요건이기도 했다. 때문에 인터넷 강국으로도 자리 잡았지만 스마트폰과 PC가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돼버렸다. 이미 오래전에 mobile society(휴대폰 사회)의 도래는 사람과의 대화가 단절되는 우려가 예견됐다.

    느려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우선 ‘슬로시티’부터 꺼내 보자.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에서 시작된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은 ‘Slow(느린)’가 단순히 ‘Fast(빠른)’의 반대가 아니라 환경, 자연, 시간, 계절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슬로시티의 슬로건은 한가롭게 거닐기, 듣기, 권태롭기,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 찾기, 글쓰기 등 치열한 무한 속도 경쟁의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여유로운 아날로그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1998년 이탈리아에서 ‘슬로시티 국제본부’가 결성된 후 ‘느림의 삶의 미학’을 추구하며 이듬해 10월 본격 출범했다.

    세계는 물론 한국의 모든 농촌지역이 웰빙휴양시티를 표방하고 있는 가운데 도내에서 유일하게 하동군 ‘악양면’ 전체가 지난 2009년 2월 슬로시티에 가입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악양면을 찾으면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이 있고, 평사리들판과 부부송, 동정호가 있다. 한산사와 고소산성, 문암송과 십일천송, 악양면 일대를 조감도처럼 굽어보는 구재봉, 조씨고가와 상신마을의 돌담길….

    도내 각 자치단체에도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하동군은 세계적 트렌드를 먼저 읽고 조기에 선점해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면 또는 마을 단위로 12곳이 가입돼 있었으나 5년마다 실시되는 재인증 실사에서 최근 장흥군 유치면이 탈락하고, 신안군 증도가 1년 유보된 상태여서 실제는 10곳에 이른다. 슬로시티국제본부에 가입된 곳은 26개국 170여 개 지역에 이른다. 유럽인들은 어느 지역보다 삶의 질을 중요시하고 실천한다. 170여 개 지역 가운데 유럽에서만 138개 지역이 슬로시티에 가입돼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사회는 과거보다 수명이 길어지고 물질은 많아졌지만 몸과 마음은 더욱 지쳐만 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나 어디를 찾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악양면을 많이 찾는 것은 소설의 영향도 있지만 이곳이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슬로시티이기 때문이다.

    슬로시티 가입 요건이 그렇게 까다롭지도 않다. 하동을 제외한 도내 전 시·군이 ‘우리 지역으로 오시라’고 비슷비슷한 홍보만 할 게 아니라 슬로시티 가입에 도전해보면 어떨는지.

    정기홍(사회2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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